[시론] 국제중 설립 ‘미완의 설계도’로는 안된다/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수정 2008-11-05 00:00
입력 2008-11-05 00:00
홍익대 교수
교육학과
의무보편 교육단계인 중학교체제를 변형시킬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학교를 설립하면서 그 교육적, 사회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여론수렴절차나 정책연구보고서조차 없었다는 점은 놀랍다. 시범운영 등을 통해 교육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절차도 없이 모든 문제는 사후에 처리하겠다는 식의 대담함을 보인 서울시교육청의 조급함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대여론이 높았고, 불과 보름 전 서울시교육위원회가 동의결정을 유보해야 할 정도로 사회적 합의와 준비부족의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한나라당에서도 초등교육정상화와 사교육비 문제로 우려를 표했다고 전해진다. 이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단 제도를 시행하고 보자는 발상은 위험하며 무책임하다고 본다. 교육적 효과가 의문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미완의 설계도를 가지고 입주날짜부터 정하고 집을 짓고 보자는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제도는 쉽게 고치기 어려우며 그 제도로 인한 부담은 사회 전체가 져야 하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고 현재의 학교 교육체제에 대한 개선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제도의 개선은 사회적 적합성과 다양한 수요가 이상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전문적으로 판단한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적 ‘다양성’이 필요하다면 학생의 다양한 잠재력을 진단하고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 방안을 제시해야지 일부 ‘수요자’들의 단편적 요구에 따라 새로운 학교를 난립하는 형태로 추진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현재 설립추진 중인 국제중학교는 장기귀국자녀나 외국인유치를 위한 학교가 아니다. 일반중학교에서 소위 ‘글로벌인재’ 양성을 위해 이중언어교육을 실시하려는 것이라 명칭과 목적이 모두 혼란스럽다. 글로벌인재가 무엇인지, 이중언어교육을 통해 그러한 인재가 키워질 수 있으며 별도의 학교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 근본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기중등교육단계인 중학교에서는 진로탐색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것을 중시한다.
따라서 국제중학교와 같은 학교에 입학하는 데 작용하는 진입장벽(영어사교육, 등록금, 교육정보 등)으로 인해 개인의 성장 기회가 일찍 제한되고 포부가 조기에 냉각되는 상황들이 벌어진다면 한국교육의 기회균등 시스템에는 분명히 적신호가 켜지는 것이다.
우려대로 국제중학교가 ‘특권적’ 학교가 된다면 제도교육이 추구해온 공정경쟁의 게임은 ‘새로운 규칙’(혹은 변칙)에 의해 수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도교육이라는 게임에 진입하려는 학부모·학생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는 더욱 빨라졌다.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익히고 승자가 되기 위해 무한정 투자를 감수할 것인가, 쉬운 경쟁을 선택하고 마이너리그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게임을 포기할 것인가.‘다양한’ 능력과 잠재성이 인정되어 기뻐할 학생보다 희망을 일찍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이 안타깝고 두렵다.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2008-11-0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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