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談餘談] 재벌가 며느리/안미현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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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10-04 00:00
입력 2008-10-04 00:00
지난해 여름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부인 변중석 여사가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해가 바뀐 올 1월,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부인 하정임 여사가 찬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85세의 나이로 뒤따랐다. 그러고는 지난달,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부인 명계춘 여사가 95세에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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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현 문화부장
안미현 문화부장
각각 한 집안의 정신적 지주이자 오늘날의 그룹을 있게 한 숨은 조력자라는 점 말고도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참 많다.

하나같이 유난히 손(孫)이 많은 대식구의 맏며느리였다. 변 여사는 열다섯살, 명 여사와 하 여사는 각각 열여덟살에 시집왔다. 그 때야 다들 그렇게 많이 낳아 부대끼며 살던 시절이긴 했지만, 줄줄이 딸린 시동생에 줄줄이 낳은 자식까지 손에서 물일이 떠날 날이 없었을 터다.

변 여사의 다섯째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시어머니를 떠나보낸 날 이렇게 말했다.“날마다 며느리들이 (아침 준비를 위해)새벽 4시반쯤 서울 청운동 시댁으로 갔는데 언제나 어머님이 먼저 부엌에 나와 계셨다.”

유교적 가풍 때문에 유난히 제사가 많았던 LG가의 종부(宗婦) 하 여사도 한평생 제사상을 끼고 살았다.

부(富)를 ‘내 것’으로 여기지 않은 것도 공통점이다. 명 여사는 놀리는 난로불이 아깝다며 그 위에 보리차를 끓였고, 변 여사는 사계절을 ‘몸뻬’로 나며 “재봉틀과 장독대가 내 전 재산”이라고 했다. 여자로서의 한을 가슴에 묻은 점도 비슷하다.

최진실씨의 자살 소식에 하루종일 멍했던 아침, 이들 재벌가 어머니들의 삶이 갑작스레 중첩된 것은 왜일까.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 이면(裏面)의 고단하고 팍팍한 삶 때문이리라.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고달프지 않은 삶이 또 어디 있겠는가. 변 여사가 생전에 했다는 말이 다시한번 가슴을 후벼들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심신이 고단하지 않은)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고 싶다.”

안미현 산업부 차장 hyun@seoul.co.kr
2008-10-0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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