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김정힐’/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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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기자
수정 2008-05-29 00:00
입력 2008-05-29 00:00
지난달 중순 미국 출장길에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존 볼턴 전 국무부차관의 ‘부시의 대북 항복’이라는 제하의 기고문을 접하면서다. 부시 대통령을 정면 공격하는 내용이라 퍽 의외로 여겨졌다.

볼턴이 누구인가. 부시 1기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쥐락펴락하던 이른바 네오콘의 핵심중 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 그가 요즘 미기업연구소로 돌아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데 앞장서고 있다. 북한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한 부시 행정부가 확실히 달라졌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이런 방향 전환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져든 데 기인한다. 부시 행정부로선 임기 말 북핵 협상의 성공이 대외정책 중 마지막 희망인 까닭이다. 이처럼 초읽기에 몰린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 협상노선의 필요성을 일깨운 주역이 바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힐에게 요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어제도 베이징에서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만나는 등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엊그제 워싱턴포스트(WP)는 “힐이 지난 3년간 추진했던 북핵 협상이 부시의 최대 외교 성과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힐이 미 정부내 보수파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이름을 합성한 ‘김정힐’로 불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는 북한과의 대화에만 매달려 너무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는 조롱이다.

한국계인 빅터 차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장은 “힐은 매우 유능한 협상가이지만 영웅이 되려고 언론에 잘 나서는 데 집착하는 인물로 비쳐질 수도 있다.”고 평했다. 대북 강경론과 협상론 사이의 중도적 관점인 ‘매파적 포용정책(hawkish engagement)’을 신봉하는 그다운 중립적 평가다. 결국 힐의 최종 성패는 역설적이지만 북한의 선택에 달려있는 셈이다. 북한이 핵폐기에 성실히 응할 것이냐가 그의 명성을 좌우할 것이란 얘기다. 클린턴 행정부 때 갈루치 차관보의 전례를 감안했을 때다. 제네바협정 타결 이후 북한이 몰래 핵개발에 나서는 통에 그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2008-05-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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