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숭례문!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8-02-12 00:00
입력 2008-02-12 00:00
민족 문화유산의 상징인 국보1호 숭례문(남대문)이 사라졌다. 그제 발생한 화재로 누각은 전소해 내려 앉았고 그 자리에는 타다 만 나무들의 잔해만이 석축 위에 어지러이 널려 있을 뿐이다. 숭례문은 조선 건국 직후인 1398년 완공돼 지난 600여년 민족의 도읍지를 지킨 성문(城門)이었다. 그 무게는, 단순히 역사가 오래되었다거나 건축물의 웅장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대 외침(外侵)과 동족상잔인 6·25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위용을 유지한 민족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그 민족의 자존심이, 오히려 평화로운 시기에, 후손들이 방심한 탓에 일순 잿더미로 변했다. 이 막중한 역사적 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숭례문에 불이 나 전소한 과정을 되짚어 보면 우리가 과연 선조의 유산을 향유할 자격을 갖고나 있는지 자괴하지 않을 수 없다. 숭례문은 2006년 일반에게 개방됐다. 그래서 시민들은 자유로이 성문을 드나들며 가까이서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 역사적 의미를 즐길 수 있었다. 반면 개방에 따른 보존·관리 대책은 전무하다시피해 항상 불안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특히 야간에는 상주 관리인이 없어, 이번 화재에서 보듯이 돌발사건에는 속수무책일 것임이 예견됐다. 게다가 숭례문에는 그 흔한 스프링클러조차 없이 소화기 몇 개만 비치한 것이 화재 대책의 전부였다니 이러고도 우리에게 국보를 보유할 자격이 있는지 다만 부끄러울 따름이다.

화재진압 과정의 미숙함 또한 지적받아 마땅하다. 처음 불이 나 연기가 솔솔 뿜어져 나올 때만 해도 숭례문이 몽땅 타버리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훼손 위험성만을 들어 신중한 작업을 요구했고, 소방 당국은 당국대로 조기 진압한 것으로 오판해 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국보1호가 불에 타고 있는데도 문화재청·소방당국·서울시 등 어느 부서 하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니 우리는 숭례문을 비롯한 주요 문화유산에 관한 화재예방·진화 매뉴얼이 존재했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화재 원인과 진화 과정을 철저히 점검해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는 한편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게끔 대책을 완벽하게 마련해야 한다.

더욱 걱정되는 일은 숭례문 말고도 전국에 산재한 주요 문화재 가운데 목조건물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사회불만자들의 방화 역시 급증하는 추세이다. 수원 화성의 서장대가 방화범에 의해 재로 화한 것을 비롯해 숱한 문화유적이 이미 불길에 사그라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는 관리·경비 인력을 강화하고 일반인 출입을 일정부분 제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책은 우리 국민 누구나가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이 기회에 뼈저리게 체득하는 일이다. 문화재는 우리 세대만이 향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손 만대에 넘겨 주어야 할 민족 공동의 자산이라는 사실에 공감해야 한다.

지금 숭례문은 흉측한 몰골로 우뚝 서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무책임을 꾸짖는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비통한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보1호 상실’이라는 고통과 분노, 좌절을 딛고 일어서 숭례문을 다시 세워야 한다. 오랜 세월이 걸릴지라도 숭례문의 원형을 찾아 완전하게 북원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후손들에게 지은 죄를 그나마 줄이는 유일한 길이다. 숭례문 복원에 온 민족이 슬기와 땀을 한데 모으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2008-02-12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