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고덕산/최종찬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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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12-07 00:00
입력 2007-12-07 00:00
배추가 없는 배추밭에 을씨년스러움만 감돌고, 사람이 없는 약수터엔 물병만 줄 서 있었다. 산 입구 된바람의 축복을 받지 못한 작은 나무들의 잎사귀는 말라붙을 대로 말라붙었다. 손길만 닿아도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냈다. 백사장의 모래처럼 부드러웠던 낙엽의 매트리스는 더 이상 발바닥에 기쁨을 주지 못했다.

뒤늦은 겨울나기 준비가 한창인 청설모는 인적도 못 느낀 채 도토리를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무 꼭대기에 자리잡았으나 보호막이 모두 사라져 둥지가 걱정되는 청까치 부부는 이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홀연듯 나타난 돌풍에 앙상하게 말라붙은 가지에 위태롭게 걸려있던 나뭇잎들의 낙하훈련이 시작됐다. 마지막 남은 잎새가 떨어져나가는 그런 표정으로 나뭇잎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땅으로 떨어졌다. 잎들의 공수훈련에 산을 오르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춘 채 잠시 상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 같았다. 산의 겨울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최종찬 국제부차장 siinjc@seoul.co.kr
2007-12-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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