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베 방미와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곽재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외교안보연구원 겸임교수
수정 2007-04-25 00:00
입력 2007-04-25 00:00
2001년과 2005년에도 위안부 관련 결의안이 제출된 바 있지만 일본 정부의 로비에 막혀 상정조차 되지 못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결의안에 서명한 의원들이 80명에 육박하는 등 통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미 하원의 결의안이 통과되면 캐나다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도 이에 동참할 것으로 보여 위안부문제 해결에 있어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를 내는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의안 통과가 미국의 대일 외교정책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일본 정부와 우익 정치인들이 이번 결의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하거나 사과한 적은 있으나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은 여전히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자신의 망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 3일에는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해명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아베의 목표는 미국 내에서 뜨거워지고 있는 일본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하원의 표결을 부결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편으로는 일본의 사과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최대한 부각시켜 물타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현실인식도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베 총리의 솔직한 설명에 감사하며 아베 총리와 일본을 믿는다고 말한 후, 오늘날의 일본은 2차 대전 때와는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무리 외교적인 발언이지만 아베의 망언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사실 그 이유는 따로 있다.
아베가 일본의 이라크 부흥지원 특별조치법에 대한 연장안을 각의에서 통과시켰고 미국과 협력해 이라크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거듭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문제에 대한 국내외적인 비난여론이 거센 가운데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시에게 아베는 가장 원하는 선물을 안긴 셈이다. 이쯤 되면 두 지도자가 정치적 약점을 서로 보듬어주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미 하원 결의안이 통과된다면 우리가 원하는 다음 수순은 이를 미국의 대일 외교에 적용시켜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본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유로 부시 대통령이 대일 압박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따라서 결의안 통과 시점에 즈음하여 미국 내의 여론 형성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정부, 언론, 시민사회가 구상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곽재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외교안보연구원 겸임교수
2007-04-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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