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필름 끊김/송한수 출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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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2-13 00:00
입력 2007-02-13 00:00
“엄만 접시꽃, 난 패랭이꽃∼.”

그녀는 ‘쐬주’ 몇 잔이라도, 얼큰히 취하면 이렇게 ‘주정’을 해댄다. 어머니가 하늘로 올라가신 날 어찌나 울었던지 어깨를 못 썼을 정도였단다. 똑같은 말을 술자리를 벗어날 때까지 몇번이나 읊조리곤 했다. 그런데 다음 날 만나 그 얘기를 꺼내면 “거짓말 말라.”고 잡아뗀다.

‘만드레’라는 별명을 지닌 후배의 일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초면의 제주도 선배와 학교 얘기가 나와 ‘누굴 알겠네?’ 하며 인사를 건네는가 싶더니 대번에 삿대질이다. 친구 아무개 얘기에 곧바로 혀가 꼬이더니 말썽을 피우고 말았다. 그러나 이튿날 역시나 기억에 없단다.

술에 취하면 필름이 끊기는 사람들이 있다. 사무치는 추억이 어떤 계기를 만나 고개를 치켜들면서 두뇌의 기억회로를 짓눌러 버리는 게 아닐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어떤 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읍소해 잊으려 하고, 어떤 이는 나쁜 기억을 지우려 안 하던 짓(?)을 하고….

송한수 출판부 차장 onekor@seoul.co.kr
2007-02-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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