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무영탑(無影塔)/최태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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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2-07 00:00
입력 2007-02-07 00:00
오랜만에 탑골공원을 찾았다. 인사동 길은 익숙한데, 길 건너는 무심했다. 사람들이 별로 없다. 쉼터로 찾던 노인들의 흔적조차 희미하다. 추운 날씨 탓이리라. 무심코 마주친 안내표지가 황당하다. 공원이 좁으니,1시간 이상 머물지 말란다.‘단골’노인들을 겨냥한 무례가 민망하다.

공원내 원각사지 10층탑이 눈부시다. 유리 보호막이 반사돼서다. 그림자가 없다. 무영탑(無影塔)이 됐다. 한 외국인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아쉬운 표정이다. 유리 속에 박제된 탑이 온전하게 나올 리 없다. 그가 떠난 뒤 찬찬히 살펴본다. 수려한 조각은 그대로다. 대리석 소재의 최상의 탑파라는 찬사가 생각난다. 무소유의 불심이 빚은 현란함의 극치. 부처를 향한 중생의 무한경배인지 모른다. 일연 스님은 경주 일원을 둘러본 감상을 삼국유사에 남겼다.“절은 밤하늘 별처럼 펼쳐져 있고, 흩어진 탑은 기러기떼 행렬 같구나.”(寺寺星張,塔塔行) 고졸한 감성이 문학으로 승화됐다. 스님이 유리 속에 갇힌 원각사탑을 본다면, 어떤 감상을 남길까.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2007-02-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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