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새해엔 나이를 묻지마세요/류재명 서울대 지리학 교수
수정 2007-01-13 00:00
입력 2007-01-13 00:00
사실 새해란 말은 우리가 보는 대상이 새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새 눈’으로 보자는 우리의 다짐이 담긴 말이다. 우리가 보는 대상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사물을 보는 내 마음을 바꾸려고 하는 이 정신, 얼마나 훌륭한가?
그런데 인간은 항상 훌륭한 생각만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새해라는 말을 그렇게 자주 사용하면서도, 아직도 새롭게 바꾸지 못하는 생각들이 많다.
그런 게 한두 가지 아니지만 먼저 나이에 대한 우리의 바보 같은 생각을 살펴보자. 지난해의 그 ‘헌’ 태양을 새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놀라운 발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과감한 생각을 사람의 나이를 볼 때에는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스스로는 늙어간다고 서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몇 개월 누가 먼저 태어났나 따지면서, 아랫사람 지배하려고 하는 바보짓을 못 버리는 사람이 많다. 우리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시대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농경시절에는 나이가 삶의 지혜를 짐작케 하는 하나의 지표였을 수 있다. 세상에 첫발을 디딜 때나 회갑, 진갑 등의 잔치를 할 때나 기술에 차이가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나이 하나만으로도 젊은이들에게 공경을 요구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첨단제품이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릴 정도로 변화 속도가 빠른 때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대단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오늘이나 또 내일에는 그 지혜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시절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알게 모르게 인지하고 나이 먹는 것을 걱정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나이가 공경의 대상이 되던 옛날의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초면임에도 나이를 물어보고 상대방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어른 행세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깨나 먹은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나이를 따지면서 상대를 지배하려고 하는 경우를 본다.
세상에 우리처럼 ‘나이’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의 나이 문화에 무슨 문제가 있나? 어떻게 보면 ‘동방예의지국’의 전통으로 노인공경과 이어져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생각이 든다.
현대 정보산업사회에서의 국가 경쟁력은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속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정보의 양도 중요하지만 같은 양의 정보라고 해도 사회적으로 정보의 유통속도가 빠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정보의 혜택자도 많이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사람 간에 의식하는 장벽이 많으면 정보의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나이, 성별, 피부색깔 등으로 우리가 장벽을 의식하여 각자가 가진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문화가 강하면 강할수록 국가의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겠는가?
나이를 따지는 우리의 문화도 우리가 만든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다. 수십억 년이나 늙은 태양까지도 새해로 보는 ‘혁명적인’ 생각을 사람의 나이를 볼 때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류재명 서울대 지리학 교수
2007-01-13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