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어떤 민원인/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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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1-03 00:00
입력 2007-01-03 00:00
인천시청 1층에 있는 씨티은행에는 50대 후반 아주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나타난다. 오전 10시면 모습을 드러내 오후 7시 이후까지 은행창구 앞 자리를 지켜 “시청에서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렇다고 그녀가 시청 일이나 은행 일 때문에 이곳을 찾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 하는 일 없이 항상 같은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때문에 시청에서는 그녀의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어느날 그녀에게 사연을 물어보니, 뜻밖에도 공채증권, 채권납입 등 어려운 용어들이 줄줄 나온다. 손에는 ‘납입완납증명서’라는 꼬깃꼬깃한 서류를 쥐고 있어 은행과 관련된 해묵은 민원이 있음을 짐작케 했다. 그녀는 무언의 시위를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민원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논리에 대한 강한 집착이 그녀를 한 공간에 머물게 하는 것 같았다. 집착이 무뎌지지 않는 한 그녀의 ‘시청행’은 계속될 것이다. 사람의 집착이란 상식을 거부할 정도로 무서운 것이기에.

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kimhj@seoul.co.kr
2007-01-0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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