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자선냄비/황성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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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기 기자
수정 2006-12-08 00:00
입력 2006-12-08 00:00
책방에 들르던 길이다. 광화문 지하도 입구의 구세군 자선냄비가 눈에 들어온다. 며칠 전부터 있었을 텐데 종소리조차 눈치 못 챈 우둔함에 쓴웃음이 나온다. 책을 사고 거슬러 받은 돈을 왼손에 쥐고는 냄비에 넣는다.“소중하게 쓰겠습니다.”라고 한다. 몸에 밴 기자의 습벽을 못 이겨 “작년과 비교해 어떠냐.”고 물었는데 지난 2일부터 나와서 아직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다. 괜한 걸 물었다 싶다.

선술집에서 껌이나 초콜릿을 건네는 할머니나 전철에서 녹음기를 목에 건 장애인들의 소쿠리에 꼭은 아니더라도 돈을 넣는 일이 꽤 있다. 몇 푼 안 되는 돈을 내미는 손이 부끄럽기도 해서 주머니만 꼼지락거릴 때도 있다. 건네는 돈이 모여서 한끼 정도는 됐으면 하는 작은 소망에 종이돈이나 동전을 내밀기 시작한 게 마흔이 넘어서였던 것 같다. 예전엔 못본 척했던 게 다반사였다. 돈의 쓰임새에 의심을 하기도 했다. 자선이든 기부든 그런 말을 의식해 본 적 없지만 건네고 나면 흐뭇하다. 세계적인 검색업체 구글이 수익추구형 자선 사업에 나섰지만 베푸는 건 사업 이전에 마음이 아니겠는가.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2006-12-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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