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고령사회,제2의 인생은 농촌에서/ 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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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07-18 00:00
입력 2006-07-18 00:00
차관과 대기업 최고경영자를 지낸 분이 동남아 오지 농촌에서 봉사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뭉클했다. 은퇴 후 여행을 갔다가 그곳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고 돕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몇년 동안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네들의 농사짓는 방법을 개선함으로써 수확량을 높여 주고, 지주와 원주민 사이의 논을 둘러싼 해묵은 분쟁도 원만히 해결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본인에게 보람있는 일이겠지만 우리나라 위상도 크게 높였다.

20년 전 필자가 미국에 유학 가서 만난 중고차 딜러는 은퇴할 나이와 모아야 할 돈의 규모를 분명히 정해 놓고 일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리 주변에도 점차 은퇴 후를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 80세, 평균 은퇴 연령 53세라는 통계치를 보면 그 이유는 자명해진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자주 바뀌는 것은 패션이고 추세적인 변화는 트렌드인데 수명이 길어지고 사회가 고령화되는 것은 거대한 ‘메가 트렌드’에 속한다.‘제1의 인생’에서 직장과 거주지역을 선택할 때 정보와 자원의 제약 속에서 자기 의지와 관계 없는 결정을 내린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 축적해 온 경험과 자원 덕분에 ‘제2의 인생’은 훨씬 나은 조건에서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다.

농촌은 ‘제2의 인생’ 설계에서 일차로 고려해 볼 만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우선 생활비가 덜 든다. 도시생활을 기준으로 하면 은퇴 후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그 몇분의 일만 가지고도 생활이 가능하다. 게다가 정신적인 여유로움은 덤으로 주어진다.

도시와 농촌의 일상생활을 구분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은 계단이다. 도시에서 움직이다 보면 땅 속에서 또는 건물에서 수도 없이 많은 시멘트 계단을 오르내리게 된다. 이를 농촌에서 땅을 밟고 다닐 때의 느낌과 비교해 보면 농촌 생활이 얼마나 자연친화적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물, 공기, 논두렁, 야산, 야생화, 야생동물 같은 친숙한 자연이 가까이 있는 곳이 농촌이다. 은퇴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고령화에 따른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풀려면 다양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은퇴 후 외국 생활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귀농은 그보다 나은 대안이라고 본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들은 한가위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오를 때 느끼는 외로움을 안다. 게다가 언어까지 통하지 않으면 그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해진다.

우리 농촌에는 농사 외에도 은퇴자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활동이 기다리고 있다. 금년 봄에 열린 어떤 심포지엄에서 은퇴를 앞둔 한 여교수가 농촌에서 살면서 할 일을 여러 사람에게 발표한 적이 있다. 어린이와 농촌여성, 외국인 며느리와 그들의 자녀 등 농촌의 취약 계층을 상대로 한 사회봉사 활동 계획을 밝혔다. 이는 전형적인 상생의 시도이다. 나중에 손주들이 찾아 다닐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골 댁은 그 분 가족이 추가로 얻을 혜택이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이 많아 공항이 매우 복잡해져 평소보다 일찍 나가기를 당부하는 뉴스를 보았다. 우리의 국력이 커져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 사람들이 외국의 현실을 보고 돌아와서 국가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올 여름 휴가철은 많은 사람이 우리 농·산·어촌을 둘러 보고 은퇴 후 ‘제2의 인생’ 계획을 세우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작은 실천이 모여 농촌의 인구 유출과 경제 침체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하면 더욱 좋겠다.

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2006-07-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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