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납품가/우득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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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득정 기자
수정 2006-02-18 00:00
입력 2006-02-18 00:00
지난 16일 공정거래위와 언론사 논설위원들과의 간담회 자리. 주제가 자연스럽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차·기아차의 하청업체 납품가 인하요구 문제로 옮겨졌다.“공정위의 올해 중점 추진업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인데 납품가 인하요구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가 아닌가.”“납품가 후려치기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혁신적인 중소기업이 자생할 수 있겠느냐.”는 등 공정위의 복안을 캐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정세균 산업자원부장관이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강조한 직후 납품가 인하문제가 불거지면서 초장부터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시장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바람직하지 않다.”“막상 조사를 해보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간의 납품가 인하 합의계약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불공정거래로 몰아붙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는 등 하소연부터 쏟아냈다. 그러더니 논설위원들의 채근에 마지못해 지난해 10월 자동차업계의 납품가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환율을 이유로 하청업체에 적용한 5∼15%의 납품가 인하 요구가 무리는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물론 별로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거래관행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막상 방법론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우선 대기업 협력업체에 편입되는 것이 특혜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먹이사슬이 어떤 식으로 얽히고 설켰는지도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하청업체들은 ‘마른 수건을 다시 짜다 못해 찢어질 지경’이라고 비명을 지르지만 말을 갈아탈 엄두도 내지 못할 뿐더러 행여 낙마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게 현실이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주요 업종이 일부 대기업의 독과점 체제로 짜여진 탓이다.

그러다 보니 하청업체의 수익이란 종업원에게 월급 주고 기업주가 생활비나 챙기는 정도다. 한마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와 흡사하다. 결국 비정규직이 상류층으로 진입할 수 없듯이 하청업체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대기업의 밥 한술 절약은 다이어트라는 미덕으로 통용될 수 있지만 중소기업에는 생존의 문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6-02-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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