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책임지는 패자… 반성하는 승자/방현석 소설가
수정 2005-12-15 00:00
입력 2005-12-15 00:00
남부베트남의 최후 3일간은 무책임한 정치지도자들의 비겁함을 남김없이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미국에 고개를 조아린 채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정권을 마지막 수렁으로 밀어넣은 티우는 마침내 미국이 베트남을 포기하자 그 어떤 반미투사보다 맹렬하게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끝내 남부베트남의 최후가 현실로 다가오자 금괴를 챙겨들고 그가 도망친 곳은 다름아닌 미국이었다.
떤선 국제공항에서 철수하는 미국을 향해 ‘갈 테면 가라. 우리는 끝까지 싸우겠다.’며 호기를 부렸던 부총리 까우 끼의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미국을 따라 도망갈 사람들도 다 가라. 남아서 싸울 사람들만 나와 함께 싸우자.’며 기염을 토한 지 단 이틀 뒤, 패망을 하루 앞두고 그 역시 미국으로 도망쳤다.
전세가 이미 완전히 기울고 유력한 정치지도자들이 앞다투어 도망치고 있는 와중에 남부베트남을 떠맡은 것이 즈엉 반 민 대통령이었다.
군사전문가인 즈엉 반 민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응우옌 흐 한 준장 역시 눈앞에 닥칠 결과를 결코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밤새 짐을 꾸리고, 패망 당일 아침에는 미대사관에서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그는 대통령궁을 지킨다. 즈엉 반 민 대통령은 도망치는 대신 방송을 통해 ‘민족화해에 대한 굳건한 신념으로 선언한다. 우리는 평화적 정권이양을 위해 여기(대통령궁)에서 기다리겠다. 그리고 남베트남군에 침착하게 자리를 지킬 것을 호소하는 동시에 해방군을 향해서도 총을 쏘지 말 것을 호소한다.’
어쨌든 즈엉 반 민 대통령과 응우옌 흐 한 준장은 패자였고, 역사는 승자를 중심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진실이 아주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이 그 긴 시간의 전쟁과 대립, 파괴를 딛고 빠르게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책임 있는 패자들의 공로가 깃들어 있다. 오늘날 베트남이 경제수도 사이공을 거점으로 도약해 날 수 있게 된 것은 최소한의, 어쩌면 최대한의 책임감으로 사이공을 파괴와 의미 없는 유혈참극, 상호증오로부터 지켜냈던 이들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바로 이 점을 환기시키며 베트남의 반성과 새로운 도약을 요청하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보 반 끼엣 전 총리이다. 그는 미국과의 전쟁시기에 사이공의 공산당 서기장을 맡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을 이끌었던 지도적 인물이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정부에 진출하여 1992년부터 98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이 기간에 그는 ‘도이머이(쇄신)’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바닥을 치고 있던 베트남의 경제를 일으켜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승전의 주역이었으며, 승전이후에는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총리인 그가 베트남전 승전 30주년을 맞아 언론을 상대로 한 제일성은 ‘반성’의 필요성이었다.‘우리는 승전에 도취되었던 자만에 대한 대가를 그동안 충분히 치렀다. 이제는 제3세력을 포함하여 조국을 위해 싸웠던 모든 세력을 껴안고 다시 도약을 모색하여야 한다.’
그가 말한 제3세력은 즈엉 반 민 대통령과 응우옌 흐 한 준장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의 이 말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즈엉 반 민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접수할 당시에 그들이 남겼던 유명한 어록이 있다.‘우리가 이긴 것도 아니고 당신들이 진 것도 아니다. 우리 민족이 외세를 이긴 것이다.’ 보 반 끼엣 전 총리는 바로 이 정신으로 차분히 돌아가자고 말하고 있다.
사이공에 있는 정부청사에서 만난 보 반 끼엣 전 총리는 혁명과 쇄신이 다르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만과 증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성과 통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듯 했다.
방현석 소설가
2005-12-1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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