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새 대법원장에 바란다/ 한상범 한국법학교수회 명예회장
수정 2005-10-12 08:16
입력 2005-10-12 00:00
독재하에 일부 재판이 잘못되었던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군정독재하에서 잘못된 재판을 세상에서는 ‘사법살인’ 그리고 ‘쪽지재판’과 ‘정치재판’이라고 부른다.
결국 법률에 의한 피해자로서 국민의 재판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신임 대법원장의 사과는 그에 상응한 행동과 대응책으로 나타나야 한다. 잘못된 재판은 신임 대법원장 말대로 재검토돼 시정되어야 한다.
30여년에 이르는 군사정권의 폭정이 남긴 잔재는 그 자체로 엄청나다. 우선 상당수의 재판관이 군정독재하에서 임관되어 근무하며 보직, 전보, 승진 길을 걸어 온 과거가 있다. 그 과거에는 흠도 있고 문제가 될 일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 모두를 두고 따질 일은 아니지만,“과거를 묻지 마세요.”식으로 얼렁뚱땅 지나칠 수는 없다.
패전후 독일의 사법부는 나치즘에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며 거듭났다. 과거사를 정리하려는 우리 사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가 남긴 상처 때문에 아픔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 법원 일각에는 사회단체나 일반인의 재판 비판이 사법권 독립에 대한 침해인 듯 그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이를 지켜보자면 우리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잘못된 재판의 검토는 그 억울함의 구제와 연계되어야 한다. 공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행법상의 재심절차로는 부족하다. 그 문제의 해법은 입법부와 협조해 당장 모색 강구해야 한다.
법관은 시민의 비판과 참여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우리 법원과 검찰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를 깨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는 관리에겐 한없이 편한 제도이지만, 지금은 관료가 주인인 시대가 아니다.
일본 법조계도 시민들에게 재판참여의 문을 열고 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출신 연고·기수를 따지고 서열·석차에 줄서고 전관예우의 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않는 한 장래는 없다.
얼마전 고위 공직자나 돈 많은 부자가 형기를 제대로 채우지 않는다는 보도를 보고 다시 한번 가슴이 쓰렸다. 사법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법률의 그늘에서 억울함을 느끼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문사’를 다루는 기관에 근무하면서 법률에 의한 피해자를 거의 매일 만났다. 피해자나 가해자까지도 독재와 권위주의의 희생물이다. 법률의 마지막 파수꾼인 법원은 어떻게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법관들이여. 사법권의 독립은 당신들 스스로의 노력과 투쟁으로 지켜진다. 그러한 법관이 있을 적에 국민은 충심으로 그를 존경하고 신뢰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법의 권위의 기반이 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법률(또는 재판)이 달래지 못한 피해자가 흘리는 절망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간성과 정의를 추구해 나가는 기개가 있는 재판관을 국민은 원하고 있다.
한상범 한국법학교수회 명예회장
2005-10-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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