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박재영 환경운동가
수정 2005-07-28 08:18
입력 2005-07-28 00:00
13년 전의 복잡다난했던, 그렇지만 온몸으로 삶의 가치를 한껏 추구하던 시절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를 위한, 민초들의 주인됨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던 날들의 아스라한 기억들이 작은 파편이 되어 오늘의 삶을 지배하고 있지만, 오늘의 삶이 과거의 헌신성을 따라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나이 40대 중반의 삶은 불혹의 중간 지점에 머물러 지난 날들의 아쉬웠지만 소중했던 기억들을 삶의 저편으로 자꾸만 밀어내고 있는 형상이다. 때로는 살아있음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게 하고, 오늘을 살아감이 과거의 치열했던 삶의 가치를 진정으로 반영시키고 있지 못하다는 진한 아쉬움이 오늘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로 쌈을 싸먹고, 뒷밭에 심은 마늘종으로 장아찌를 담가먹는 전원생활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전원생활이지만, 전원생활을 영위할 기본적인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마냥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것이리라. 텃밭의 한 귀퉁이에 심은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려서 가지를 늘어뜨리지만, 자연의 섭리로 다가올 뿐 그것이 즐거움으로 느껴지지 않음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이며, 현재의 삶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삶의 한 전형으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마당에 잔디를 심고, 잔디밭 주변에 꽃들을 심고, 군데군데 단풍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전원생활의 묘미를 느끼려고 오늘도 무진 애를 쓴다.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저항하듯이 받아 쬐며, 구슬땀을 흘리는 자신이 농부의 심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자신을 학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이제는 현실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절박감이 느껴진다. 언제까지 허공에서 발을 허우적거리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70대 노인이 골프장에 일용노동자로 아침 일찍 출근하면 적막강산이 되어버리는 농촌마을에서 한없는 고독을 씹는 일은 이제 중지되어야 마땅하다.
요즘 필자는 환경홍보교육을 하느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강의를 다닌다. 환경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보호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도 하다. 나태했던 과거의 생활을 반성한다는 의미에서도 필자에게는 절실히 필요했다. 환경교육의 말미에 필자는 학생들에게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을 큰 소리로 따라하게 한다. 그렇다. 미천한 인간이지만, 때로는 공기중에 묻어다니는 미진만도 못한 인간일지도 모르지만,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는 확신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야 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며,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또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어쩌면 가장 가치있는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가는 날들의 소중함을 때때로 확인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살아가는 날들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해서 오늘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재영 환경운동가
2005-07-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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