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호상/심재억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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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6-23 09:32
입력 2005-06-23 00:00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문상객들은 하나같이 ‘호상(好喪)’이라며 맏상주인 아버지와 인사를 나눴고, 이내 고주망태가 되어 떠들어댔다. 그들의 표정 어디에도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사람과 헤어지는 아쉬움은 없어 보였다. 어린 내게는 그런 세태가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장례 후, 할머니가 쓰셨던 수저와 비녀, 누런 가족사진 등속이 가지런히 놓인 상방(喪房)에 아버지는 매일 아침 탕과 메를 올리곤 하셨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맞은 아버지 생신날 아침, 아버지는 상방 영정 앞에 엎드려 한참을 우셨다. 호상이라는 문상객들을 웃으며 맞던 아버지도 속으론 무척 슬프셨구나 하는 생각에 마루 끝에 앉은 나도 연신 목젖을 꿀꺽여야 했다.



그날, 아버지 곁에 다가가 “그 때는 호상이라더니….”라며 운을 떼자 눈길도 주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다.“키우던 개가 죽어도 짠한 법인데, 부모상에 호상이라니. 슬퍼 말라고 그렇게들 하는 말이지.” 그 때서야 나는 아버지에게 가졌던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죽어서 헤어지는 일, 문득 눈시울 매워지는 기억이거늘, 아무리 고단한 삶이라도 ‘잘 죽었다.’는 호상의 죽음이야 있겠는가.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6-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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