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관습헌법 인정, 법리상 문제없나/김상겸 동국대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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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0-22 07:47
입력 2004-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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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헌법학 교수
김상겸 동국대 헌법학 교수 김상겸 동국대 헌법학 교수
헌법재판소가 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위헌결정을 내렸다.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3개월 만에 신속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사안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에 있어서 핵심은 관습헌법의 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성문헌법국가인 우리에게 관습헌법은 상당히 생소한 용어이다. 원래 관습헌법은 헌법사항에 관한 관례나 선례를 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성문헌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가의 정치조직이나 제도 등에 관련된 내용이 법전화하지 않고 관습이나 선례의 총체로서 제도화하여 형성되는 규범이다. 관습헌법은 불문헌법 국가인 영국이나, 영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국에서 인정되어 온 개념이다.

관습헌법의 대표적인 것으로 보통 미국의 위헌법률심사제를 든다.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제도임에도 모든 국민과 국가기관이 연방대법원에 의하여 만들어진 제도의 헌법적 효력을 인정하여 오늘날까지 헌법에 명문규정 없이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에서 보듯이 우리 현행 헌법에는 명문으로 수도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는 수도에 관한 사항은 성문헌법에 규정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으로 불문헌법의 일종인 관습헌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수도에 관하여 헌법이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수도의 의미나 역사성, 그 내용을 고려할 때 충분히 헌법에 해당하는 사항이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을 헌법적 사항으로서 수도에 대한 논거로 삼고 있다.

그와 함께 성문헌법 국가에서 헌법은 그 내용이 추상적이며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관습헌법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의 견해에는 법리상의 문제가 있다. 성문헌법을 갖고 있는 국가에서 관습헌법을 인정하더라도 그 효력은 어디까지나 성문헌법의 보충적 효력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헌법은 관습헌법에 대한 근거를 전혀 마련하고 있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수도의 중요성 때문에 관습헌법으로서 인정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관습헌법으로서 보충적 효력을 가질 뿐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질 수 없다.

우리 헌법에서 수도에 관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한 관습헌법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하여 성문헌법상의 성문헌법과 동등한 개정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은 법체계와 법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된다. 수도문제가 헌법적 사항이라는 것과 헌법개정 절차를 밟아야만 가능한 사항이라는 것은 별개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해석은 헌법의 통일성 원칙을 벗어난 것이라 생각된다.

여하튼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효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한 후유증은 적지 않으리라 본다. 이번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되기까지 행정부는 너무 국민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여야는 이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당리당략에 의하여 법의 시행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도외시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이 헌법재판소에 이러한 권한을 주고 있는 이상 우리 모두가 이에 승복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사건으로 책임을 통감하여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말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면서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상겸 동국대 헌법학 교수
2004-10-22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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