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좌우는 색깔이 아니라 방법이다/임현진 서울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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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0-20 07:49
입력 2004-10-20 00:00
현대축구를 ‘토털 사커’라 한다.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이 특징이다. 예전처럼 공격과 수비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연결수(링커)들을 활용하여 전술을 마련한다. 좌우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볼 때, 극좌(레프트 윙), 중도좌(센터 레프트), 중도(센터 포드), 중도우(센터 라이트), 극우(라이트 윙)라는 다섯 명 공격수의 위치는 무의미하다.

지금 세계는 어떤가.‘좌’와 ‘우’는 있지만 유연하다. 마치 링커들이 수시로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가며 공격과 수비 연결을 하듯, 좌우의 거리는 좁혀져 있다. 좌파 정부도 시장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우파 정부도 국가의 역할을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시장을 중시하면 우파요, 반시장이면 좌파란 고정관념을 갖지 않는다. 국가주의와 시장주의는 국가발전의 이질적 전략 요소이지만 좌파나 우파 정부는 그것들을 탄력적으로 받아들인다.

냉전 체제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는 지구를 하나로 묶어가고 있다. 바로 세계화다. 세계화의 도전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마다 대응 전략이 서로 다르다. 국가주의와 시장주의를 적절히 섞는다. 물론 배합의 기준은 역사 경험과 정치문화에 따라 다르다. 영국의 신(新)자유주의적 제3의 길이 시장주의를 선호한 것이라면, 네덜란드의 신사회민주주의적 제3의 길은 국가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다소 혼돈스럽다. 국민의 정부 아래에서 영국식 신자유주의 발전 모델이 거론되었다면, 참여정부아래에선 네덜란드식 신사회민주주의 발전 모델이 운위된 바 있다. 물론 논의 이상의 적용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혼돈스러운 이유는 현실 적합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식 공동체 발전 모델의 ‘기초’ 위에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발전 모델을 ‘기둥’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영국의 신자유주의 발전 모델이나 네덜란드의 신사회민주주의적 발전 모델의 ‘지붕’을 얹으려 하니 집이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좌우 개념이 남용되고 있다. 정부 정책을 둘러싸고 정부가 간섭하거나 규제하면 좌요, 시장의 자율과 규칙에 맡기면 우라고 말한다. 오죽하면 지난 주말 국정감사에서 성매매특별법을 ‘좌파적 정책’이라고 비난한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김현미 의원은 ‘우파들의 준동’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색깔 칠하기나 다름없다. 여성의 인권 보호와 신장을 위한 법을 좌우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회의적이다.

도대체 좌와 우란 무엇인가. 좌와 우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의회에서 연유한다. 당시 급진파는 왼쪽에, 수구파는 오른쪽에 자리를 잡고 격론을 벌였다. 이를 계기로 좌는 진보, 우는 보수의 상징어가 되었다.

결국 알맹이는 진보와 보수의 정의다. 선발 발전국들의 경험은 만들어 놓은 것을 지키려고 하는 보수와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진보 사이의 갈등과 타협을 보여준다. 진보가 신선한 것은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보수는 만들어 놓은 것을 지키려 하니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계를 갖는다. 기득권을 둘러싼 현상 유지와 타파가 그 귀결이다.

한국의 역사는 진정한 좌우 대결과 공존의 역사를 갖지 못했다. 일종의 ‘이념 콤플렉스’를 갖게 된 배경이다. 극우가 보수를 대변하고, 극좌가 진보를 독점하는 시대에서 건전 보수와 합리 진보는 설 땅이 없었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립이 타협보다 반목으로 이어져온 까닭이다.

진리는 쉬운 데 있다. 새는 두 날개로 난다. 왼쪽으로 돌려면 오른쪽 날개가 필요하듯, 오른쪽으로 돌려면 왼쪽 날개가 긴요하다. 바람직한 미래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좌우 날개의 이치를 잘 살펴봐야 한다. 좌우를 목표 도달을 위한 이념이자 또한 방법으로 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 교수
2004-10-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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