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사회의 바둑급수 올리기/이공주 이화여대 약학대학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수정 2004-10-05 00:00
입력 2004-10-05 00:00
그러나 정작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다 컸다며 내 경험을 고집하고 내 급수대로 인생을 살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에 접하게 된다.인생에서도 급수가 있고,낮은 급수들도 잘 배워 시간이 지나면 고수가 되면 좋을 텐데….그래서 사회의 성숙도는 구성원들의 인생 급수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는 것 같다.우리가 살며 경험하는 것을 살펴보자.개인 가족사에서 시작하여 내가 속한 직장도,국가도,사람이 새롭게 바뀌면 이런저런 오류들이 나온다.단편적인 생각으로 정책을 시행했다가 문제점이 드러나면 다시 수정하고,한참을 헤매다가 원점으로 되돌아오면서 그 많은 시간 동안 에너지만 소모하고 마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된다.그런 까닭에 시간이 지나도 발전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느리게 변화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우리의 역사 수준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둑에도 원칙이 있듯이 인생과 사회에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경험하고 나면 한수를 배워 금방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것도 많다.사람들은 가끔 자신들의 문제는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나고 보면 대다수의 경우 경험과 타인이 제시한 해결책이 보다 도움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도 어린시절,중·고·대학시절이 있었고,직장에서의 경험과 인간관계,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서 갖는 느낌,아이를 결혼시키고 손자를 보고,윗사람으로서 전체를 보아야 하고,죽음을 목격하는 등 바둑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경험을 겪어왔다.사회의 변화와 정책도 마찬가지다.시대에 따라 변하는 환경과 이에 대응해 역사의 발전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 역시 모든 참여자들이 겪어야 하는 일이다.또 이를 처음 경험하는 경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살다 보면,우리는 여기저기에서 인생의 고수들을 만나게 된다.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면 한다.물론 시간이 지난다고 모두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어려서 같이 배웠던 친구들의 최종 바둑급수가 모두 다르듯이….
어떻게 하면 사회 구성원들의 인생 급수를 올릴 수 있을까.인생의 고수들이 제구실을 하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과학의 발전은 기록의 역사다.과학에서 가설이 객관적인 사실이 되려면 실험하고 그 결과를 자세히 매뉴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실험을 통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이러한 객관적 사실에 또 다른 새로운 결과가 더해지면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다른 사람이 이미 경험한 것을 반복만 한다면 과학의 발전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과학은 많은 사람들이 반복적인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밝혀낸 사실을 매뉴얼로 만들어야 하는 등 나름의 체계와 도덕률을 가지고 있다.성숙된 사회로 가려면 개인과 조직의 경험을 자세히 기록하고,매뉴얼화해 다음 사람들이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탄탄한 철학을 가지고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회를 그려 본다.그리고 구성원들이 나보다 급수가 높은 고수를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면,역사가 있는 사회,경험이 축적된 사회로의 발전 역시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고 꿈꿔보기도 본다.
이공주 이화여대 약학대학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2004-10-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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