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아버지 이순신/심재억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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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0-02 10:53
입력 2004-10-02 00:00
다시 난중일기를 읽으며 ‘아버지 이순신’을 만난다.왜란이 막바지로 치닫던 정유년(1597년) 10월.충남 아산의 고향집이 왜적의 침탈로 초토화됐다.막내 아들 면이 왜적에게 맞서다 숨졌음을 알리는 서찰을 받은 그달 14일 “서찰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여….겉봉에 ‘통곡’이라는 글자가 적혀 아들의 죽음을 알았다.”고 적었다.

그러나 조국의 명운을 홀로 짐진 그는 눈물조차 뜻대로 흘릴 수 없어 16일 일기에 적었으되,“내일이 면의 비보를 들은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마음놓고 통곡도 할 수 없어 영 내의 강막지네 집으로 갔다.”고 했다.여기서 그는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맞거늘,이런 법이 어디 있겠는가.남달리 영특해 하늘이 너를 세상에 머물게 하지 않음이냐.내 죄가 네게 미친 것이냐.”라며 밤새 우짖었다.17일 새벽에는 상복을 갖춰입고 탄식했다.“내 이제 세상에 살아남아 누구를 의지할까.”



그로부터 1년 뒤,마지막 결전인 노량해전에서 그는 거친 밤바다에 빗긴 선홍의 노을처럼 스러져 갔다.자식의 주검을 가슴에 묻은 한 가솔의 아버지로,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핍박한 한 나라의 아버지로.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4-10-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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