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실체없는 反시장주의 논란/임춘웅 언론인
수정 2004-09-08 08:16
입력 2004-09-08 00:00
그런데 우리는 한국 경제의 어떤 부분이 반시장적이고 현 정부의 어떤 정책이 좌파적인지를 솔직히 알지 못하고 있다.그래서 혼란스러운 것이다.그 때문에 시비를 하는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 주기 바란다.실체는 없이 성토만 있는 괴이한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닌 까닭이다.
본시 시장주의란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이다.그런데 최근에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까지 나서서 한국에서 시장주의를 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발언을 해 작은 파문이 일었다.그러나 이헌재 부총리도 시장주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인 부분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어느 경제연구원의 책임자는 우리 경제가 평등주의 정치논리의 덫에 걸려 정체성을 잃고 있다고 했고 모 대학 교수는 현정권이 좌파적 가치에 함몰해 있다고 비판했다.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평등주의와 좌파정책의 실례들을 적시해야 한다.그런데 시비의 핵심은 피한 채 엉뚱하게도 “과연 한국의 민주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바람직했던가?”란 터무니없는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민주주의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한국경제의 어떤 부분이 반시장적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경제전문가 몇분을 만났다.그러나 아무도 구체적 정책사례를 제시하지 못했다.어떤 이는 수도이전 추진이 증거라고 했다.국토의 균형발전론이 평등주의라는 것이다.어떤 이는 공기업 민영화를 중단하고 있는 게 증거라고 했다.어떤 이는 세법개정 추진이 그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은 구체적 정책이 아니라 이 정권이 구사하는 레토릭(수사)이 문제라는 것이었다.이 정권의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안 하려 하고 경제가 위축되고 있다는 논리였다.
황당한 논리의 비약이고 또 하나의 색깔논쟁이다.경제가 어려운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구체성 없이 좌파정권 운운하는 비판이 오히려 경제환경을 어지럽히는 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한 정권의 성격과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색과 토론이 있어야 한다.국민은 그것을 알고 있을 권리가 있다.그러나 실체없는 비판은 무익하고 무책임하다.
더구나 시장주의가 마치 성경말씀처럼 돼가는 풍조도 생각해 볼 문제다.시장경제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지만 자본주의가 만능이란 발상은 곤란하다.근대 경제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가 본다면 작금의 미국까지도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라고 분개할지도 모른다.정부가 금리를 조정하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원리가 아닌 것이다.시장경제는 꾸준히 수정되고 스스로 연마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많은 경제학자들도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가 가져올 도덕적 허무주의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특히 세계화하는 세계에서 무절제한 시장자본주의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윌리엄 파프는 “세계화된 시장자본주의가 영향력 측면에서만 보자면 레닌주의보다도 훨씬 급진적이며 혁명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그는 이어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세계화는 역사상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던 전쟁이나 배타적 민족주의에 맞먹는 힘을 갖고 있으며 이는 핵무기보다도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시장경제는 만능이 아니다.시장경제의 야만적 속성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은 인류의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국가만이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세계화 시대에 국민국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춘웅 언론인
2004-09-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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