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서울의 중국어표기/김규환 수도권부 차장
수정 2004-09-08 08:15
입력 2004-09-08 00:00
중국인들에게 수도 이름을 산뜻하고 멋있게 지어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겠다는 데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표기안이 시행되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우선 우리들은 한자의 원 글자를 그대로 쓰는 번체(繁體)자를 채용하고 있는 반면,중국은 이를 간략화한 간체(簡體)자를 사용하고 있는 까닭에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따라서 간체자의 서울 표기는 ‘首爾’나 ‘首午爾’가 아닌 ‘首’이나 ‘首午’이어서,우리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단어가 추가될 우려가 있다.
잘 접하지 않는 한자인 탓에 우리들이 한자로 적으려면 너무 어렵다는 점도 있다.중국인들이 사용하니까 상관이 없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중국인들이 ‘서울’을 어떻게 쓰느냐고 물으면 ‘얼’에 해당하는 ‘’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표기안을 중국 정부에 홍보하는 것도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무엇보다 표기안을 홍보하기 위해 뛰어줄 ‘발’이 없다.
서울시는 예산을 절약한다는 차원에서 2002년 베이징(北京)에 파견돼 있던 2명의 주재관들을 불러들였다.
이들 2명이 쓰는 예산은 연간 4억원 선.4억원이라는 돈이 거액임에는 틀림없지만,연간 14조원의 예산을 쓰는 거대조직 서울시가 ‘서울의 국제화’와 ‘중국 전문가 양성’,‘중국과의 네트워크 구축’ 등에 쓰는 비용으로 0.003%도 채 안 되는 돈을 아껴야 할 만큼 재정사정이 어려운가.정작 요긴하게 써야 할 때 사용할 수 없어 아쉬운 대목이다.
이 때문에 홍보는 전적으로 베이징에 주재하는 외교통상부·국정홍보처 등의 외교관들에게 의존해야 한다.그러나 외교관들은 북한 핵문제,탈북자 문제 등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나 시도 때도 없이 방문하는 국회의원 등 ‘높은 분들을 모시는 데’ 매달리고 있어,이를 홍보하는 데 어느 정도 신경을 써줄지도 의문이다.
직접 사용 당사자인 중국 정부도 냉담한 편이다.중국 관영 광밍르바오(光明日報)는 지난달 사설을 통해 “한국인들은 ‘漢城(서울)’의 ‘한(漢)’자가 중국의 漢왕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 서울의 중국어표기 개정작업을 하는데,이는 남의 나라 고대 왕조에 대한 거부 반응”이라며 “시안으로 내세우는 ‘首’ 등은 15억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표기법”이라고 비판했다.이 탓인지 서울시가 표기안과 관련,설명회를 갖겠다고 주한 중국대사관측에 비공식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좋은 이름을 짓는 것도 중요하다.하지만 지은 이름이 불리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한·중 수교 12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중공(中共)’보다 ‘중국(中國)’이라고 부르지만,아직도 많은 중국인들은 ‘한궈(韓國)’ 보다 ‘난차오셴(南朝鮮)’이라고 말한다.중국인들이 새 표기안을 불러주도록 보다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김규환 수도권부 차장
2004-09-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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