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피를 싣고 달려라/김용수 공공정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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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8-09 08:02
입력 2004-08-09 00:00
대학을 잠시 쉬고 지방의 한 도시에서 택시 운전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한밤중에 도립의료원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비닐봉지 하나를 건넵니다.피가 들어 있는 봉지입니다.지방에서는 꽤 큰 이 병원에서 혈액을 보관하고 있다가 시골병원이 요청하면 택시로 보내줍니다.“도중에 합승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웃돈까지 얹어줍니다.한마디로 ‘운수 좋은 날’입니다.

그러나 피가 들어있는 싸늘한 비닐봉지를 조수석에 ‘앉혀놓고’ 한밤중에 시골길을 달리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달빛이 교교히 비치는 공동묘지 옆을 지나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무서워서 더 빨리 달립니다.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립니다.“나는 무서워서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피가 필요한 환자를 위해 빨리 가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정부가 혈액운송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민간분야인 택시 기사에게 맡긴 것입니다.냉동설비도 없는 택시에 말입니다.지난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혈액안전관리개선 종합대책’ 공청회를 보고 불현듯 옛 생각이 났습니다.

김용수 공공정책부 차장 dragon@seoul.co.kr
2004-08-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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