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베스트셀러 만드는 법/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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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8-05 07:21
입력 2004-08-05 00:00
지난달 15일,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인간 개발 보고서 2004’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인간 개발지수’ 순위는 지난해보다 약간 올라간 28위다.이 지수는 단지 경제적 층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답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자원이 적고,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의 인간 개발지수가 계속 높아지기를 나는 바란다.

최근 경제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는데,이 점을 내가 종사하는 출판계에 대입해 보면,불행히도 아직 우리가 손대지 못하고 있는 인간 개발의 측면이 너무 많은 데 놀라게 된다.출판 불황의 원인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결국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는 듯하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결국 출판 불황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출판과 관련하여 인적인 능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책을 쓰는 ‘필자’ 그리고 그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문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편집자는 현실을 읽고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다.독자를 견인하는 메시지가 담긴 책을 만들기 위해서 편집자는 스스로를 개발해야 한다.책의 장르가 문학서든 실용서든 인문서든 아동서든지 간에 그 안에는 새로움과 치열함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읽으면 좋은 책’은 많다.하지만 독자는 책을 다 읽어보고 사는 것은 아니다.그 독자에게 책을 사게 하려면 책 자체가 강력한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컨셉트가 선명해야 한다.그러니 마땅히 편집자는 공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으로 필자의 문제를 생각해보자.필자가 없으면 편집자에게 좋은 기획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구체적인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다.사실 필자의 문제는 비단 출판사만의 문제는 아니다.결국 책은,또 필자는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의 바로미터다.문화적 세련성이란 어느날 문득 달성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들에 대해서도 할말이 있다.우리 필자들은 너무 엄숙하거나 너무 온건하다.너무 엄숙하다는 것은 어떤 필자의 경우 책을 단지 경력 관리 차원에서만 경직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너무 온건하다는 것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술에 등한하다는 바로 그 점에서 나온다.

미국의 유명저자 빌 브라이슨의 예를 살펴보자.그는 저널 출신의 여행가이자 집필가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냈다.그의 저작들은 여행기뿐 아니라 언어개발서까지 있다.미국의 애팔래치아 산맥 종주기인 ‘나를 부르는 숲’은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그의 글쓰기는 철저한 자기 관리에서 나왔다.주제에 대한 엄청난 양의 공부와 자기 헌신으로 유명하다.얼마 전 그가 펴낸 과학책도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제목도 야심적인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바로 그 책이다.자연과학 책으로는 전례가 드물게 미국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도 한 이 책은 과학 저술로도 모범적인 저작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은 이 책을 쓰기 전에는 ‘원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한다.놀랍지 않은가.빌 브라이슨은 우리들에게 ‘인간 개발’과 ‘필자 개발’의 참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2004-08-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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