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흑백TV/오풍연 논설위원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4-06-16 00:00
입력 2004-06-16 00:00
해질 무렵,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온다.큰 멍석이 그들을 기다린다.앞 자리는 언제나 노인들 차지.바짓가랑이가 해져 고추가 보일 듯 말 듯한 손자는 할머니 무릎에서 온갖 재롱을 피워댄다.젖먹이 아기는 엄마 품속에서 곤한 잠에 빠진다.농사일로 파김치가 된 장정들은 졸음을 쫓느라 무진장 애쓴다.마당 한쪽에선 모닥불이 피어 오른다.어릴 적 우리 마을에 흑백텔레비전이 처음 들어왔던 때의 모습이다.

당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프로레슬링.김일 선수는 모두의 우상이었다.그의 박치기 한 방에 상대 선수들은 그대로 무너졌다.특히 일본 선수를 넘어뜨릴 땐 동네가 떠나갈 듯했다.30여가구 중 방앗간 집이 맨 처음 TV를 들여왔다.면 소재지 다방에나 가야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으니,다른 가정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다.그 집 애들이 동네 꼬마들로부터 부러움을 산 것은 당연했다.



그랬던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이 현재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80인치짜리 대형 PDP TV도 선보였다.이제 흑백텔레비전은 골동품 반열에 올랐다.그래도 TV를 보는 재미는 그 때만 못하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2004-06-16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