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들의 氣가 살아나야 한다/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상무·경제학박사
수정 2004-06-04 00:00
입력 2004-06-04 00:00
그런데 왜 경제가 어렵다고 야단인가.경기양극화 때문이다.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수출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지만 내수 침체가 도를 지나쳤다.도소매 판매 증가율이 아직도 마이너스 상태이고,서비스업 전체도 1%대의 증가세에 머물고 있다.설비투자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수출을 성장전략의 축으로 채택한 60년대 이후 대외경기는 한국경기의 선행지표가 되어 왔다.수출이 살아나면 투자,소비순으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전반적인 경기가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 상승기간도 평균 33개월 정도로 길었고,대외여건이 양호할 때 경기가 둔화된 전례는 없었다.그런데 현재의 경기순환은 사정이 다르다.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가 어디에선가 끊어진 것이 분명하다.
투자의 패러다임 전환이 1차적 원인이다.기업은 수요가 늘어도 설비를 늘리지 않고 있다.최근 제조업의 평균 가동률이 몇년만에 80%를 넘어서면서 이를 투자회복의 반가운 신호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다.그러나 가동률이 80%를 웃도는데도 투자증가율이 마이너스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는 기존시설의 가동률을 높여 수출 수요 확대에 대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환란 이후 진행돼 온 구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기업에 대한 주식시장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위험이 수반되는 장기 모험투자를 기피하게 되었다.주식시장은 변덕이 심하고,장기보다 단기 실적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기업은 번 돈으로 위험이 수반되는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보다 현금 보유나 재무구조 개선에 치중한다.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은 저렴한 생산비용을 찾아 중국 등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또 금융기관이 가계대출에 주력함에 따라 자체조달이 가능한 일부 우량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투자재원 확보도 쉽지 않다.노사갈등,지배구조를 둘러싼 대기업 관련 규제 등 경영여건도 기업투자에 유리하지 않다.단순히 수출이 잘 된다고 해서 투자가 자동적으로 증가하기를 기대하기에는 환경이 너무 많이 변했다.
가계버블의 후유증으로 소비증가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지난 3년간 200조원 가까이 증가한 가계부채가 경제에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다.가계 빚이 440조원에 이르고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가구당 부채가 연간 소득과 비슷한 3000만원 가까이 된다.원리금 상환부담을 감안하면 올해에 소비 가능한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내구재 소비도 저금리로 지난 몇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한 탓에 추가 지출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다행히 ‘한마음금융’의 출범 등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해 본다.
수출의 성과가 내수촉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경제주체들의 마음이 열려야 한다.특히 기업들의 기(氣)가 살아나야 한다.투자에는 정형화된 이론이 없다.기업가들의 동물적 본능에 의한 투자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졌을 뿐이다.외환 위기 이후 구조개혁이 기업의 재무구조와 지배구조 개선에 주안점을 둔 나머지 투자 환경 조성에는 미흡했음을 인정해야 한다.과거 관행으로 수출이 늘고 있으니 내수도 자연히 따라오겠지 하다가는 체감경기와 지수경기가 일치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상무·경제학박사˝
2004-06-0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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