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10년만의 해후/우득정 논설위원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4-05-04 00:00
입력 2004-05-04 00:00
30년 전 고교 시절,한 묶음처럼 몰려다니며 아옹다옹했던 세 녀석이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기억조차 아련한 옛 얘기들을 앞다퉈 끄집어내며 소주 잔은 무서운 속도로 돌고 돌았다.그동안 건성으로 전화로만 안부를 물었던 서로의 무신경을 나무라면서 머리에 내려앉기 시작한 서릿발을 새삼 탄식하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한 착각에 잠길 무렵,기억의 재고가 동이 난 탓인지 어느 새 화제는 ‘최근’,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옮겨졌다.얼굴이 익숙한 특정인을 필두로 한 정치와 이념,성장이냐 분배냐,주한미군 문제 등 세 녀석 사이에 전혀 공통분모가 없는 주제들이었다.하지만 술을 들이켤수록 머리는 더욱 맑아지고 목청은 높아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당연시하는 한 녀석과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또 한 녀석.접점 없는 논쟁만 거듭하다 보니 종업원이 계속 눈치를 준다.새벽 3시가 넘었다.‘같음’을 느끼기 위해 시작된 만남이 ‘다름’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세월의 간극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우득정 논설위원˝
2004-05-04 4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