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에누리/강석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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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4-17 00:00
입력 2004-04-17 00:00
에누리를 보고 배운 것은 어려서였다.냉장고가 흔치 않던 시절,도시의 여자들은 자주 장 나들이를 해야 했다.그 시절 집안 어른과 장사꾼의 흥정은 어린 나로서는 지루한 줄다리기였지만,뭔가 얻어먹는 재미에 장보기 동행길에 나서 참관자가 되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값 깎는 게 겸연쩍어지다가 에누리를 다시 배운 것은 결혼 후다.집안 대소사에 큰 장을 보면서 집안 어른의 물건 값 깎는 노련함을 눈여겨 보았다가,혼자 물건 사면서 복습해 본다.원님과 급창(사환)이 흥정해도 에누리는 있다지 않던가.장사꾼과 오가는 수작도 재미있고,에누리에 성공하면 생활인이 된 듯한 뿌듯한 느낌도 든다.



언젠가 길을 지나다 손수레 위에서 구워내는 호떡이 먹음직스러워 몇 닢 사면서,에누리 대신 쉽게 한 닢 더 받아왔다.집안 어른께 성공담이랍시고 지절거리는데,돌아온 말은 뜻밖이다.“큰 장수에게 깎는 거지,푸성귀 팔고 호떡 파는 작은 장수에게 에누리하는 것 아니다.” 아,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구나.어설픈 배움이 손품 발품 팔며 사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렸으니 탄식한들 무엇하리.이미 호떡은 다 먹어치운 걸.

강석진 논설위원˝
2004-04-17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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