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신문 단상/이상일 논설위원
수정 2004-04-08 00:00
입력 2004-04-08 00:00
100여년전 박영효 등 조선시대 선각자들이 국내 첫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를 창간한 것은 ‘국민 계몽과 개화’를 위해서였다.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신문을 만들거나 보는 사람은 요즘 어디에도 없다.오히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는 ‘거울 이론’을 내세우거나 서구에서처럼 특정 시각에서 세상을 보여준다는 동굴론을 주장하는 게 더 진솔해보인다.
무엇보다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 자체가 주제파악을 못한다.스스로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인 경우가 태반이다.미국신문편집인협회(ASNE)의 조사결과 ‘진보적이거나 민주당편’이라고 믿는 미국 언론인은 61%였으며 보수적이거나 공화당편은 15%였다.시청자들에게 진보적으로 비쳐진 TV앵커 월터 크롱카이트 등은 실제와 달리 ‘중립적’으로 나타났다.우리나라는 신문별로 이념적 색깔이 덧칠해진데다 객관성도 도마위에 올라있다.뉴스의 속보성에서 TV와 인터넷에 뒤진 신문은 단순 기사의 보도에서도 공정성을 결여했다는 비판도 나온다.한마디로 신문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위안이라면 뉴스 가치의 경중(輕重)을 단번에 종합적으로 파악하는데 종이 신문이 여전히 강점을 갖고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 때문이다.인터넷·TV에서 볼 수 없는 신문의 특성이란 것이다.기자들도 쉬지 않고 기념식도 거의 없는 4월7일 ‘신문의 날’에 종이신문의 존재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쑥스럽다.그래도 ‘신문은 사라져도 기자들은 증언한다.’는 어느 책의 목차처럼 사실을 밝히는 보도정신은 계속 살아있길 기대해본다.
이상일 논설위원˝
2004-04-08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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