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춘설/김인철 논설위원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4-03-06 00:00
입력 2004-03-06 00:00
<매화 옛 등걸 봄절(節)이 돌아온다/예 피던 가지마다 피염즉도 하다마는/춘설(春雪)이 하도 분분(紛紛)하니 필지 말지 하더매라> 조선시대 한 노기(老妓)가 가는 세월을 한탄하며 부른 매화타령이다.봄이 왔건만 늙고 병들어 꽃봉오리를 맺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한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춘설의 심술을 탓하는 노기의 투정에서 애잔한 심사가 물씬 느껴진다.

춘삼월에 난데없이 폭설까지 몰아치며 추위가 기승을 부려 가뜩이나 움츠린 서민들의 마음을 더욱 더 쪼그라들게 한다.그야말로 중국 4대 미인의 하나로 꼽히는,한의 후궁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족에게 팔려간 뒤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고 읊었듯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형국이다.



꽃샘추위라던가.겨우내 호령하던 동장군(冬將軍)이 맥없이 물러나기가 아쉬워 마지막 맹위를 떨치는 것이리라.매화니 산수유니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리던 봄꽃나무들은 느닷없는 눈사태에 화판(花瓣)을 다시 접어야 할 판이다.하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다.

김인철 논설위원˝
2004-03-06 4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