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 성적 단어? 발칵…‘세그스’ 단어 쓰는 여성들, 이유 있었다 [월드픽]
하승연 기자
수정 2026-10-25 22:00
입력 2026-10-22 16:42
여성 건강 정보 막는 SNS 알고리즘
의학 정보와 성적 콘텐츠 구분 못 해
임신 베개 광고에서 ‘임신’이라는 단어를 문제 삼고, 여성 생식기 구조를 설명하는 의학 정보 게시물에 민감도 필터를 적용하는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여성 건강 관련 콘텐츠가 부당하게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콘텐츠 관리 시스템이 의학 정보와 성적인 콘텐츠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서 여성 건강 정보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근 영국 BBC에 따르면 임신 베개를 판매하는 업체 벨라 문(Bella Moon)의 운영자 아이린 브린은 2025년 1월 인스타그램으로부터 자사 제품 광고가 삭제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메타 측과의 통화에서 광고 제한 사유가 제품명에 포함된 ‘임신’(pregnancy)이라는 단어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브린은 “웹사이트 전체에서 해당 단어를 삭제하고 제품명도 바꿔야 했다”며 “URL에 ‘임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페이지도 모두 없애고 주소를 변경했다”고 토로했다.
광고 제한은 결국 해제됐지만, 메타와 협의하는 데만 10개월이 걸렸다. 그사이 업체는 상당한 재정적 손실을 보았다고 브린은 밝혔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웰빙과 성 건강, 생식 관련 제품 및 서비스를 홍보하는 광고를 허용하지만, 국가와 문화권에 따라 이용자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일부 제한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BBC 보도가 공개된 뒤 메타 측은 “‘임신’이라는 단어를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게시물에서 해당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임신 관련 콘텐츠를 공유하거나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광고주뿐 아니라 여성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츠 제작자와 자선단체도 게시물 삭제와 노출 제한 등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용자에게 게시물을 보기 전 별도 버튼을 누르도록 하는 민감도 필터가 적용되거나, 콘텐츠가 사실상 이용자에게 노출되지 않는 이른바 ‘섀도 밴’(shadowban)을 당한다는 것이다.
여성 건강 콘텐츠 검열 반대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센서십’(CensHERship)이 지난달 콘텐츠 제작자와 의료기관, 건강 관련 기업, 자선단체, 교육자 등 약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6%가 어떤 형태로든 콘텐츠 제한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한 전문가는 플랫폼이 운영 지침 위반 가능성이 있는 게시물을 찾아내는 데 AI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잘못 판단할 수 있으며, 한 번 잘못 분류된 정보가 축적돼 이후에도 같은 오류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인암 관련 자선단체 ‘이브 어필’의 아테나 람니소스 최고경영자(CEO)는 인스타그램에서 일부 해시태그가 검색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믿기 어렵겠지만 ‘질암’(vaginal cancer)이라는 해시태그도 그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브 어필은 외음부의 해부학적 구조를 그림으로 설명하고 외음부암의 증상과 신체 변화, 멍울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 통보를 받았다. 의학적 설명을 위한 해부도였지만, 게시물에는 민감도 필터가 적용됐다.
단체 측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몇 주가 지나서야 게시물이 다시 공개됐지만, 필터는 그대로 유지됐다.
람니소스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건강 정보가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라며 메타에 문제를 제기한 뒤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가임력 검사 기업 허틸리티(Hertility)의 디어드러 오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오닐은 자궁내막증을 앓는 여성이 자신의 통증 경험을 이야기하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영상을 게시했다가 삭제당했다고 말했다.
오닐은 “그 여성은 우리 서비스를 판매하지도 않았고 허틸리티를 언급하지도 않았다”며 “단지 자신이 겪은 통증을 설명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메타는 해당 영상을 정치 관련 콘텐츠로 분류했다.
메타는 이들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플랫폼에서 여성 건강 관련 콘텐츠를 허용하고 있으며 관련 단체들과 협력해 콘텐츠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닐은 틱톡에서 광고를 집행하는 과정도 “장애물 코스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광고를 올릴 때마다 이의 제기와 검토, 삭제 절차가 반복돼 투입하는 시간과 자원에 비해 얻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콘텐츠 노출 제한은 여성들이 건강 문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꺼리게 만들고 있다. 센스허십 조사에서 섀도 밴 등의 조치를 우려해 스스로 표현을 검열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지난해 53%에서 올해 65%로 늘었다.
이들은 ‘섹스’(sex) 대신 ‘세그스’(seggs)라는 우회 표현을 쓰거나 별표와 이모티콘으로 특정 단어를 대체하고, 일부 주제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센스허십 공동 창립자인 클리오 우드는 이런 현상이 “매우 해롭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 건강은 역사적으로 수치심과 죄책감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런 방식은 그 문제를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드는 여성 건강 콘텐츠가 실제로 질병을 발견하고 치료받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외음부암 증상을 이브 어필의 게시물을 통해 처음 알게 됐고, 이후 관련 정보를 찾아 의사에게 필요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2024년 센스허십을 출범한 이후 SNS 기업들도 여성 건강 콘텐츠 제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다만 정책상 허용되는 콘텐츠라고 명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드는 “정책에서 허용한다고 해도 알고리즘이 해당 콘텐츠를 계속 문제 콘텐츠로 분류해 노출을 제한한다면 그것이 바로 문제”라며 “플랫폼 내부에서도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들이 서로 분리돼 있는 만큼, 보다 통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승연 기자
세줄 요약
- 임신·질암 등 여성 건강 콘텐츠 삭제 논란
- AI 분류 오류로 의학 정보까지 노출 제한
- 이용자·단체, 우회 표현과 자가 검열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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