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라의 브랜드 앤 아트] 옷을 배우로 쓰다, 미우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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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10-13 01:03
입력 2026-10-13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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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디오프 감독의 ‘비너스를 위한 단편들’(2025), 브리지트 라콩브 미우미우 제공
알리스 디오프 감독의 ‘비너스를 위한 단편들’(2025), 브리지트 라콩브 미우미우 제공


한 흑인 여성이 미술관을 걷는다. 여자는 자신과 같은 흑인 여성이 그려진 그림 앞에 멈춰 서고, 그때마다 내레이션이 작품명과 해설을 읽어 준다. 화면이 바뀌면 이번에는 다른 흑인 여성이 뉴욕 브루클린 거리를 걸으며 또 다른 흑인 여성들을 바라본다. 횡단보도 안내원, 지하철 승객, 벤치에서 그림 그리는 여성. 감독은 이들을 오늘의 비너스로 그린다.

프랑스 감독 알리스 디오프의 21분짜리 단편 ‘비너스를 위한 단편들’이다. 이 영화의 제작비를 댄 곳은 영화사가 아니라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다.

미우미우는 2011년부터 여성 감독에게 제작비를 주고 단편영화를 의뢰해 왔다. ‘우먼스 테일즈’라는 이름으로 15년 동안 32편을 제작했다. 조건은 하나, 등장인물이 미우미우 옷을 입을 것. 주제와 이야기는 감독이 정한다. 그래서 옷은 화면 구석의 협찬품이 아니라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배우가 된다. 아녜스 바르다의 ‘세 개의 단추’에서 시골 소녀는 우편으로 온 커다란 드레스 속으로 들어가 모험을 떠나고, 단추가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이야기가 바뀐다.

미우미우는 감독을 고르는 눈도 남달랐다. 미국 감독 에바 듀버네이는 선댄스 감독상을 받고도 일감이 거의 없던 때 미우미우의 의뢰를 받았다. 2년 뒤 그의 장편 ‘셀마’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올해 그 이야기들이 스크린 밖으로 나온다.

이달 하순 열리는 아트페어 아트바젤 파리는 페어 기간 동안 도심 곳곳에서 무료 전시를 연다. 공식 파트너인 미우미우는 2024년부터 그중 파리 16구 팔레 디에나의 전시를 맡아 왔다.

올해는 이곳을 전시 경험 없는 영화감독 디오프에게 통째로 맡겼다. 21일부터 닷새간 열리는 ‘위로의 몸짓’이다. 그의 영상 설치와 자넬레 무홀리의 사진, 시몬 리의 조각이 네 개의 방으로 이어진다.

명품이 예술을 후원하는 흔한 방식 중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명성을 사는 일이다. 미우미우는 반대로 간다. 명성이 아니라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에 건다. 물론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은 브랜드의 몫이다.



이세라 아츠인유 대표·작가·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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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라 아츠인유 대표·작가·방송인
이세라 아츠인유 대표·작가·방송인
2026-10-1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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