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급여 깎이고 의료급여 끊길라”…기초연금 포기 노인 4년 새 3.3배

이현정 기자
수정 2026-08-25 15:36
입력 2026-08-25 15:36
‘줬다 뺏는 기초연금’의 덫
극빈층 노인 7만 명 “차라리 안 받아요”
기초연금 미수급률 3.0%→6.5%
의료급여 탈락 우려에 현장서 신청 만류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으면서도 기초연금은 받지 않는 노인이 4년 새 3.3배로 급증했다. 기초연금을 받아도 생계급여가 그만큼 깎이고 자칫 의료급여마저 끊길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취약층을 더 두껍게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하후상박’ 개편이 실효를 거두려면 이른바 ‘줬다 뺏는 기초연금’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5일 국민연금연구원의 ‘기초연금 미수급자 현황 및 특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운데 기초연금을 받지 않은 노인은 6만 9776명으로 추산됐다. 2020년 2만 968명에서 4년 만에 3.3배가 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 중 기초연금 미수급자 비율도 같은 기간 3.0%에서 6.5%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연구진은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에서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이음’으로 확인한 기초연금 동시수급자를 빼 미수급자 규모를 추산했다. 개인별 신청 여부를 직접 집계한 것은 아니지만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 기초수급 노인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추세는 뚜렷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초연금을 받아도 실제 소득이 거의 늘지 않는 제도 구조 때문이다. 현행 생계급여는 국가가 정한 선정기준액에서 가구의 소득인정액을 뺀 부족분만 지급한다. 이때 기초연금은 소득으로 전액 잡힌다. 기초연금을 받은 만큼 생계급여가 줄어 노인이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늘지 않는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함께 받은 노인 78만 3222명 가운데 99.8%인 78만 1561명이 생계급여를 감액당했다. 월평균 감액액은 33만 2610원으로 지난해 기초연금 최고액 34만 2510원의 97.1%에 달했다. 기초연금을 받아도 대부분이 생계급여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간 셈이다.
생계급여 수급자인 차재설((69)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이날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이번 달 기초연금을 입금받고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삭감하면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며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주지 말라”고 말했다.
소득이 수급 기준선에 가까운 노인은 의료급여 자격까지 잃을 수 있다. 올해 1인 가구 의료급여 기준은 월 소득인정액 102만 5695원 이하다. 소득인정액이 70만 원인 노인이 올해 기초연금 최고액인 34만 9700원을 받기 시작하면 소득인정액은 104만 9700원으로 올라간다. 의료급여 기준을 2만 4005원 넘기 때문에 다른 조건에 변화가 없어도 수급 자격을 잃을 수 있다. 기초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이 ‘안 받거나, 받아도 남지 않는 연금’이 된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는 “기초연금을 받아도 생계급여가 깎이고 의료급여까지 탈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예 신청하지 않는 노인이 늘고 있다”며 “현장 사회복지사들도 적극적으로 신청을 권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해법은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됐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기초연금을 기초생활보장 소득에 포함해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재정 부담과 다른 수급자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정부는 2024년 9월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함께 받는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추가 지급하고 추가 지급액을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시행되지 않았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에 지급하는 현행 틀을 유지하면서 저소득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더 주는 ‘하후상박’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이 오르는 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드는 구조를 그대로 두면 가장 가난한 노인은 인상 효과를 누릴 수 없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대표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가 알려진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해결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번 하후상박 개편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빈곤 노인의 박탈감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세줄 요약
- 기초연금 수급 기피, 생계급여 삭감 우려
- 기초수급 노인 미수급자 4년 새 3.3배 증가
- 하후상박 개편 실효 위해 제도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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