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이해 못할, 어린이만 이해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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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수정 2026-02-14 10:00
입력 2026-02-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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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먹는 법
오렌지 먹는 법


“없는 아이가 태어났어. 없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뱃속에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아기는 ‘없는 아이’로 세상의 빛을 본다. 아기를 받은 조산사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 내가 무언가를 받았는데, 묵직했는데, 아기가 없어…….” 동화작가 송미경의 새 동화집 ‘오렌지 먹는 법’(문학동네)에 실린 단편 ‘없는 나’를 읽고 ‘없이 있는’ 존재의 슬픔에 잠긴다.

‘없이 있음’은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모순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런데 있다.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그런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아기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투명인간’의 슬픔은 비단 문학 안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현실에도 투명인간이 있다. 고통받고 있는데, 그들의 절규는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그렇게 내가 알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을 때 보자기처럼 넓은 할머니의 영혼이 흩어져 있던 내 영혼을 끌어안았어. 나는 다시 하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덩어리가 되었어. 할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안겼어. 그것은 내가 그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이 내가 되는 것이지만 여전히 나는 나인 채로 있는 거였어.”(‘없는 나’ 중에서)

‘내가 그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이 내가 되는 것이지만 여전히 나는 나인 채로 있는 것.’ 어른도 이해하기 힘든 존재의 역설. 동화를 읽는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어린이만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너’에게 이입하고 ‘너’를 ‘나’에 투영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2008년 등단 후 개성적인 문체와 측정할 수 없는 에너지를 보여주며 어린이와 만나온 동화작가 송미경의 이번 동화집 ‘오렌지 먹는 법’에는 초기 대표작 세 편과 최신 작품 세 편까지 총 여섯 편의 동화가 실렸다. 송 작가는 이런 말을 독자에게 전했다.



“이 단편집의 동화들은 내가 지나쳐 온 날들의 이야기예요. 그리고 나와 여러분의 이야기예요. 내가 마치 세상에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닐 때 누군가 나를 믿어 주어 내가 보이게 된 이야기예요. 우리가 보지 못하고 걸어온, 어떤 길가에 분명히 서 있었던 아이의 이야기고요. 우리가 빚어 놓고도 돌보지 않았던 찰흙 인형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라지게 하거나 나타나게 했던 모든 것의 이야기예요. 눈이 오는 날이었거나 햇살이 펑펑 쏟아졌거나 혹은 조금 남은 달빛이 복숭아나무 가지에 걸리지 않으려고 간신히 버티고 있던 어느 밤에, 그 달빛을 보며 문득 상상했던 모든 이야기 중에 가장 작고 작은 이야기예요.”

오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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