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손에 이끌려 스키장 간 초등학생, 78년 한국 동계올림픽 역사 이정표 쓰다

박성국 기자
수정 2026-02-10 14:19
입력 2026-02-10 14:19
여고생 스노보더 유승은(18·성복고)이 78년 한국 동계올림픽 역사에 ‘첫 여성 설상 메달리스트’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의 첫 동계올림픽 출전이었던 1948년 생모리츠 대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금메달이 나오지 않아 ‘금맥 불모지’로 남아 있는 올림픽 설원에도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유승은은 10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171점을 획득, 최종 3위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스노보드팀 ‘맏형’ 김상겸(37·하이원리조트)이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따낸 은메달에 이은 한국 선수단의 이번 대회 두 번째 메달이자, 역대 한국 설상 종목 세 번째 메달이다. 스키와 스노보드 종목으로 구성된 한국 설상 대표팀은 안방 평창에서 열렸던 2018년 대회에서 ‘배추보이’ 이상호(31·넥센윈가드)가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인 은메달을 땄다.
이재명 대통령도 유승은이 이룬 놀라운 성과에 찬사를 보냈다.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스노보드 빅에어와 같이 위험 부담이 큰 종목에서 유 선수가 보여준 담대한 도전 정신과 흔들림 없는 집중력은 국민 모두에게 경이로움과 큰 감동을 안겨줬다”고 격려했다.
총 29명이 출전한 예선을 4위로 통과하며 결선행을 확정 지은 유승은은 예선 마지막 점프를 마친 직후 현장의 중계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없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한국에서 TV 중계로 지켜보고 있을 아버지를 향한 인사였다. 정작 딸에게 스노보드를 알려준 아버지는 가슴이 조려 방송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승은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스노보드 애호가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용평의 스키장을 갔다가 스노보드에 눈을 떴다. 눈썰매를 타던 어린 유승은의 눈엔 눈발을 휘날리며 설원을 멋지게 질주하는 아빠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스노보드 실력은 날이 갈수록 부쩍 늘기 시작했다.
선수로 이루고픈 욕심이 생기자 부상이라는 시련이 연이어 찾아왔다. 그는 2023년 9월 국제스키연맹(FIS) 세계 주니어 스노보드선수권 빅에어서 준우승하며 국제 무대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으나, 이듬해 FIS 월드컵 대회에서 오른쪽 발목이 골절돼 1년여를 치료와 재활에 보내야 했다. 길었던 재활 끝에 떠난 지난해 7월 일본 전지훈련에서는 팔꿈치 뼈가 빠지는 부상을 당했고, 11월에는 손목 골절까지 더해졌다.
유승은의 주 종목인 빅에어는 높이 30m가 넘는 슬로프에서 활강해 대형 점프대에서 도약, 점프와 회전, 착지 등의 연기 점수와 비거리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공중 기술이 화려할수록 착지 실수에 따른 부상 위험이 큰 운동이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부상도 ‘기필코 올림픽 무대에 서겠다’는 그의 꿈까지 꺾지는 못했다. 유승은은 손목 수술 후 깁스를 착용한 채 그해 12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월드컵에 도전했고, 부상 공백이 무색한 완벽한 점프 연기로 은메달을 차지하며 밀라노 올림픽 청신호를 켰다.
첫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거머쥔 그는 현장 인터뷰에서 “1년 동안 부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없었지만, 이번 경험은 제게 ‘다음에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면서 “저 자신이 정말 사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을 대표해 스노보드를 탈 수 있어서 무척 영광이다. 우리도 스노보드를 이 정도로 할 수 있다고 보여준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해준 부모를 떠올리면서는 눈물을 터트렸다. 유승은은 “내가 1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화도 많이 냈고 그랬는데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메달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던 거니까...”라고 울먹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박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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