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역사적 대승을 거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9일 도쿄 총리 관저에 도착하고 있다. 도쿄 로이터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일본 집권 자민당이 8일 중의원 총선에서 헌법 개정 발의선을 넘는 압승을 거두면서 전후 평화헌법 체제 수정, 이른바 ‘전쟁가능국가’ 전환 논의가 현실 정치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선거 이후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건 조성을 시사하는 등 보수 정체성 강화 행보가 이어지면서 ‘개헌 시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자민당은 중의원 465석 가운데 316석을 확보해 단독으로 개헌 발의 기준선(3분의 2·310석)을 넘어섰다. 창당 이후 역대 최다 의석수 확보다. 여기에 집권 여당인 일본유신회(36석)를 더하면 352석으로 늘어난다.
정치권에서는 개헌 추진에 속도를 낼 구조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TV도쿄 인터뷰에서 “헌법 개정은 당의 기본 노선”이라며 “구체안을 국회 헌법심사회에서 심의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개헌 논의를 공식 의제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일본 헌법 9조는 전쟁과 무력행사의 영구 포기, 전력 보유 금지, 교전권 부인을 규정한 평화헌법의 핵심 조항이다. 자민당은 실질적 군 조직인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전쟁 포기’의 틀은 유지하되 자위대를 명문화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개헌 시도는 전례가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도 2017년 개헌선 의석을 확보했지만 연립 파트너 공명당의 신중론, 야권 합의 실패, 여론 동력 부족 등이 겹치며 성립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치 지형이 다르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야권 약화와 개헌 우호 세력 확대, 연정 파트너 일본유신회의 보수 노선 공유가 추진 환경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개헌에 긍정적인 제2야당 국민민주당(28석)과 우익 성향 참정당(15석)까지 포함할 경우 개헌 우호 의석은 395석에 달한다. 이는 선거 직전 261석에서 크게 증가한 규모다.
대외 환경 역시 변수로 거론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축하 메시지에서 “보수적 ‘힘을 통한 평화’ 의제를 이행하는 데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그 열의를 갖고 투표한 일본 국민은 언제나 나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동맹국의 안보 부담 확대를 요구하는 흐름 속에서 이 발언은 헌법 9조 개정 추진과 방위비 증액 등 일본의 군사 역할 확대 움직임에 우호적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지역 안보 책임 분담 기조는 일본의 역할 확대 요구와 맞물려 군사력 정상화 논의를 자극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동북아 핵 도미노 가능성까지 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물려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포함한 방위비 증액 등 안보 강화 정책은 연내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실제 다카이치 내각은 안보 정책 전반의 재편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후지TV 인터뷰에서 살상 능력을 갖춘 무기 수출 확대와 관련해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고, 국가정보 역량 강화를 위한 국가정보국 설치 의지도 시사했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맹국과 주변국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도쿄 명희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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