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들이 불던 피리 첫 확인…백제 목간 329점도 무더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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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수정 2026-02-05 10:15
입력 2026-02-0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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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사비 백제 왕궁터’ 발굴 조사 성과 공개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사비 백제 왕궁터’ 발굴 조사 성과 공개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사비 백제 왕궁터’ 발굴 조사 성과 공개
(서울=연합뉴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부여 관북리 유적을 조사한 결과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가로 피리) 1점을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악기 유물의 출토 모습. 2026.2.5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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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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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사비, 지금의 충남 부여에 도읍을 둔 시기(538~660) 왕궁터로 거론되는 관북리 유적에서 약 1400년 전 사용했던 피리 실물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당시 관등과 관직, 인사 기록 등 국가 행정 전반을 엿볼 수 있는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도 무더기로 나와 백제사의 빈칸을 채울지 주목된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024~2025년 부여 관북리 유적을 조사한 결과,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橫笛·가로 피리) 1점을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부여 관북리 유적은 사비 백제기의 왕궁터를 논할 때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곳이다. 부소산 아래 넓고 평탄한 땅 위에 들어선 유적은 1982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해 대형 전각(殿閣·임금이 거처하는 집을 뜻함) 건물 흔적과 수로, 도로 시설 등이 확인됐다.

연구소는 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하거나 국가적 행사를 여는 상징적 공간인 조당(朝堂) 추정 건물터 인근의 구덩이에서 악기 유물을 찾아냈다. 대나무 재질의 유물은 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크기의 구덩이 바닥에 묻혀 있었는데, 몸통 일부가 부러지고 납작하게 눌린 상태였다. 남아 있는 부분은 22.4㎝ 정도로, 전체의 30% 정도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에는 인위적으로 가공한 구멍이 있었고, 엑스레이(X-ray) 분석 결과 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吹孔·취공)이 있는 한쪽 끝이 막힌 구조로 파악됐다.

악기의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추정 연대는 568∼642년(신뢰 수준 95.45%)으로 나타났다. 크기와 형태를 볼 때 오늘날 소금(小)과 비슷한 것으로 판단된다. 연구소는 “유물의 재질, 구조 등을 고려하면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악기, 즉 가로 피리로 판단된다”며 “삼국시대를 통틀어 관악기 실물이 발견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횡적이 발견된 장소도 눈여겨볼 만하다. 구덩이 내부를 분석한 결과 편충, 회충, 간흡충 등 기생충 알이 검출돼 건물에 딸린 화장실 시설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학계에서는 이번 조사에서 찾은 백제의 문자 자료를 특히 주목하고 있다.

연구소는 약 2년간 삭설(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 또는 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을 포함해 총 목간 329점도 발견했다. 국내 단일 유적에서 나온 목간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수량이다. 목간 외에도 글씨는 없지만 목간 형태를 띠는 목간형 목제품이 192점 나왔고, 삭설과 비슷하지만 글씨가 없는 목설은 1459점 출토됐다.

목간은 약 20m 길이의 수로 안에서 집중적으로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목간을 재활용하기 위해 얇게 깎아낸 삭설, 목설이 함께 다량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인근 건물은 목간을 제작하고 관리한 시설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목간도 있었다. ‘경신년’(庚申年), ‘계해년’(癸亥年)이라고 적힌 목간은 함께 출토된 유물, 배수로 조성 시기 등을 고려할 때 각각 540년과 543년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국가 운영과 통치 체제를 엿볼 수 있는 ‘공문서’ 흔적도 눈에 띈다. 길이가 28.3㎝에 달하는 목간에는 ‘공적이 4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다’(功四爲小將軍刀足二)는 문구가 적혀 있어 인사와 관련한 문서로 추정된다. 해당 목간은 위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는 점이 특징이다. 비슷한 종류의 목간을 끈으로 엮어 만든 편철(編綴) 목간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사례다.

또 백제의 16관등 가운데 13번째에 해당하는 ‘무독’(武督), 중앙 행정 구역인 5부(部), 6세기 지방 통치와 관련한 지명, 월 단위의 식량 등의 내용이 담긴 목간이 여럿 출토됐다. 그간 일본에서 만든 한자로 알려진 ‘전’(畑) 자가 적힌 목간도 확인됐다. 학계에서는 백제 문화가 일본 고대 문자 문화가 성립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소는 “백제의 국가 운영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문서 행정 실태와 당시 음악 문화와 소리 복원에 기여할 실물 자료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연구소는 이날 부여군과 함께 주요 유물과 횡적 재현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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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사비 백제 왕궁터’ 발굴 조사 성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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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부여 관북리 유적을 조사한 결과 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 또는 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인 삭설을 포함해 총 목간 329점을 발견했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목간이 출토된 1호 배수로와 주변 건물터. 2026.2.5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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