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독일 최고의 賢者 슈미트 전 총리…애연가로도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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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5-11-11 07:43
입력 2015-11-1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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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언론인으로 큰 영향력…퇴임 후에도 왕성한 활동

살아 있는 독일 최고의 현자(賢者), 최고의 인물로 독일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타계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슈미트 전 총리는 현존하는 독일의 최고 인물로 꼽혔으며 독일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2005년 독일의 정치인, 문화인, 예술인, 체육인 등 17명의 저명인사들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슈미트 전 총리가 96%의 지지로 최고의 인물로 선정된바 있다.

또 2002년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가 슈미트 전 총리를 현존하는 인물 중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꼽았다.

사회민주당(SPD) 출신의 슈미트 전 총리는 1974년부터 1982년까지 총리직을 역임하는 동안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로 국민의 신망을 얻었다.

그는 전임자인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독일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으며 후임인 헬무트 콜 총리에게 통일 과업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1974년 브란트 총리가 보좌관의 간첩행위 파동으로 물러난 후 슈미트는 의회 표결을 통해 총리로 선출됐다. 슈미트는 1976년과 1980년 총선에서 연속 승리했으나 1982년 사민당-자유민주당(FDP) 연정이 붕괴하자 사퇴했다.

짧지 않은 집권 기간, 전세계에 불어닥친 오일쇼크 회오리에 맞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독·불 정상 협력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는 크게 주목받았다. 위기 극복과 함께 유럽 통합의 심화를 이끈 이 협의틀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다국 정상 협력틀의 맹아였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1977년 가을, 적군파 테러 광풍이 몰아친 이른바 ‘독일의 가을’의 위기는 슈미트 리더십을 대중에 각인시킨 결정적 장면 중 하나였다. 결국 적군파에 피랍된 한스-마르틴 슐라이어 독일산업연맹(BDI) 회장의 희생이 초래되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슈미트는 여객기 승객들을 담보한 적군파 테러에 맞서 이들을 구해내며 위기를 넘겼다.

구 소련의 SS20 중거리 핵미사일의 유럽향 배치로 유럽 전역이 안보위기에 닥쳤을 때에도 그는 소련과 협상하되 실패 시 독일 중심으로 중거리 핵마시일을 배치한다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해 유럽의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을 둘러싼 논란과 경제, 재정 정책을 두고 불거진 이견이 겹쳐 1982년 자민당과의 연정은 파국을 맞았다.

그는 정치권에서 물러난 뒤 독일 주간신문 디차이트 공동발행인으로 활동하면서 언론인으로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또한 활발한 저술 활동과 언론 기고를 통해 독일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왔다.

슈미트 전 총리는 정계 은퇴 이후에도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과 경고를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이 고조됐을 때 그는 “1차 세계대전의 서곡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처럼 사태를 악화시킨 유럽연합(EU) 관료들의 접근방법을 ‘과대망상증’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체인 스모커’로 유명한 슈미트 전 총리는 담배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파이프를 피워 문 모습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고 있는 골초 정치인인 그는 총리 재직시에도 정상 회담이나 기자 회견에서 거의 빠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등장했다. 그는 90세를 넘어서도 쉴새 없이 담배를 피웠다. 독일 국민은 그동안 슈미트 전 총리의 흡연을 문제 삼지 않았고 오히려 노익장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지난 4월 흡연이 허용된 TV 인터뷰에서 1시간 남짓 방송시간 동안 담배 10개비를 피워 화제가 된 바 있다.

독일에서 금연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에는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운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그는 좋아하는 담배 종류가 판매 금지될 것을 우려해 200여 보루를 사재기하기도 했다.

고인은 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것으로 유명했던 만큼이나 직설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독일인들은 그런 그를 ‘수다쟁이 슈미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애정을 담아 부르는 ‘전직 총리’(Altkanzler) 소리를 항상 들어온 그는 너절한 잡언보다는 촌철살인의 명언으로도 사랑받았다.

“국제 정상회담은 큰 계획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최악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타협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 타협할 능력이 없는 자는 민주주의와 함께할 수 없다”라는 묵직한 담론에서부터 “정직이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말해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만 말하는 것”이라는 알듯 모를듯한 언술이 그의 어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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