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나이 잊은 방앗간 할아버지와 심청이 딸 이야기

김소라 기자
수정 2015-07-16 17:55
입력 2015-07-16 17:52
EBS 1TV 오늘 밤 ‘장수의 비밀’
경북 성주군의 한 마을에는 지은 지 150년이 다 된 옛 방식의 정미소가 있다. 60년 넘게 이 방앗간을 지켜 온 박두준(93) 할아버지는 평생 ‘정직’을 신념으로 삼고 손님들에게 1등급의 쌀만을 100% 도정해 팔아 왔다. 그런 할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8남매 중 둘째 수연씨다. 결혼해 학원을 운영하던 딸 수연씨는 6년 전 친정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아버지 곁을 지키기 위해 친정으로 돌아왔다.
13살 때부터 방앗간 일을 시작한 할아버지에게 기계는 장난감이고 방앗간은 놀이터다. 6년 동안 할아버지의 일을 도운 딸이 이제 기계를 만질 줄 알지만, 할아버지는 아직도 자기 손으로 다 해야 성이 풀린다. 딸은 아버지가 혹시라도 넘어질까 걱정이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이웃 사람들은 수연씨를 심청이라 부른다. 외식을 싫어하고 기름진 음식도 싫어하는 할아버지의 입맛에 맞춰 매 끼니를 정성으로 차려 내고 밤에도 곁을 지키며 말벗이 돼 준다.
밀 수확 후라 한창 바쁜 때, 밀방아 기계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손님들이 덜 건조시킨 밀을 가져와 빻다 보니 밀가루가 체에 뭉쳐 구멍이 난 것이다. 수연씨는 공구를 들고 높은 기계 위에 뛰어올라 살핀다. 금세 기계의 고장 난 부분을 찾아 뚝딱뚝딱 고쳐 기계는 다시 힘찬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5-07-1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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