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에 6·25 참전 美 해군대위 흉상 제막
수정 2014-09-29 16:06
입력 2014-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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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인들은 전쟁 중에 자유를 지키려고 분투하고 있는데 제가 이들을 도우러 가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 평화가 찾아왔을 때 선교사로 돌아가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는 일입니다”
해군사관학교
그는 1950년 9월 22일 서울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매복한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참전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29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서울 은평구는 2010년 6월 은평평화공원을 만들고서 그를 추모하는 동상을 세웠다.
쇼 대위는 일제강점기 때 선교사로 한국에 와 있던 월리엄 얼 쇼 부부의 외아들로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제가 쇼 일가족을 강제추방한 1941년까지 한국에서 생활했다.
해군 중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했던 그는 전역 후 1947년부터 1년간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 해안경비대 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동했다.
생도들에게 영어, 함정 운용술 등을 가르치며 창군기 해군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밟던 중 6·25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한국은 나의 조국”이라며 해군대위로 재입대했다.
해군사관학교는 29일 학교 내 통해관 1층 도서관 로비에서 이기식 해군사관학교장, 리사 프란체티 주한 미국해군 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월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흉상 제막식을 했다.
쇼 대위와 그의 부모는 현재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6년 쇼 대위에게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는 은성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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