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벼랑 위의 포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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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12-13 01:20
입력 2008-12-13 00:00

인간 소년에 반한 금붕어 소녀

금붕어 소녀 포뇨는 아빠의 보호 아래 살고 있는 바다가 따분하고 지겨웠다.몰래 가출을 감행한 포뇨는 해파리를 타고 육지로 향하다 유리병 속에 갇히고 만다.때마침 바닷가에 놀러 나온 소년 소스케가 포뇨를 구하면서 둘의 만남이 시작된다.아빠에 의해 바다로 돌아간 포뇨는 소스케에 대한 사랑으로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데,소녀의 과감한 행동이 세상의 혼돈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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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
‘벼랑 위의 포뇨’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0년대 초반의 인터뷰에서 “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나오면 사랑에 빠져야만 하는지 생각하게 됐어요.조금 더 다른 관계 둘이 함께 살아가는 관계라고 할까,그것이 불가능한 건지 생각하고 있습니다.그걸 그린다면 진정한 사랑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죠.”라고 말했다.‘벼랑 위의 포뇨’는 그때의 말을 실현했음 직한 작품이다.소년과 소녀의 사랑과 함께하자는 약속에 세상이 숨을 죽인다.

2008년에 나온 두 편의 탁월한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와 ‘월-E’는 ‘존재 간의 순수한 접촉’을 지상과제로 삼는다.

두 편의 천연덕스런 로맨스에서 ‘자연과 인간의 교감,환경보호,자아의 발견’ 같은 주제를 뒷전으로 밀어내는 건 ‘입맞춤의 마법’과 ‘마주잡은 손의 기적’이다.그래서 거대한 서사,화려한 비주얼,심오한 주제가 특징인 미야자키의 근작들에 익숙한 관객은 ‘벼랑 위의 포뇨’가 왠지 부족하고 심심하다고 여길 것 같다.

우주가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으며,어머니의 사랑도 눈에 보이진 않는다.이처럼 진정 위대한 존재는 스스로를 감춘다.‘벼랑 위의 포뇨’가 숨겨놓은 보석을 찾는 일은 쉬운 듯 어렵다.수수께끼의 인물들,설명되지 않는 부분들,느슨하게 연결된 이야기 너머에 자리한 ‘로맨스의 정수와 약속의 가치’를 발견하길 바란다.

‘벼랑 위의 포뇨’의 모티브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지만,전자의 이야기와 인물들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이야기와 인물을 생생한 터치로 묘사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은 결과다.

예전 작품인 ‘이웃의 토토로’,‘마녀 배달부 키키’의 훈훈한 분위기,포근한 캐릭터와 재회하는 기분도 근사하다.

미야자키는 연필로 직접 그리는 수작업 애니메이션으로 ‘벼랑 위의 포뇨’를 완성했다.17만장의 그림에서 피어난 인간적인 터치는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지친 눈을 말끔하게 씻어낸다.

바다의 역동적인 움직임,물밑으로 잠긴 세상에 등장하는 신비한 생물들,화면 곳곳에 배치된 아기자기한 생명체 등을 보노라면 노대가의 꿈을 눈으로 만지는 듯하다.원제 ‘崖の上のポニョ’,감독 미야자키 하야오,18일 개봉.

영화평론가
2008-12-1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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