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jing 2008] ‘마린보이’ 어제와 오늘
수정 2008-08-11 00:00
입력 2008-08-11 00:00
亞 선수론 72년만에 금빛 영광 7세때 천식 고치려고 수영 시작
박태환(19·단국대)이 막판 치열하게 따라붙은 장린(중국)과 라슨 젠슨(미국)을 따돌리고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는 순간 노민상(52) 수영대표팀 감독의 얼굴엔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지난 2월27일 싱가포르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 이날 결선까지 분 단위로 ‘금빛 프로젝트’를 깨알같이 적어 놓았던 그다.
전날 밤 “금메달을 못 따면 어떡하느냐.”고 묻는 박태환에게 노 감독은 “결과가 어떻든 한국 수영의 새 역사를 쓰는 거다.”고 다독거렸다. 그리고 박태환은 마침내 노 감독의 말대로 역사를 바꿨다. 힘차게 휘두르는 ‘금빛 스트로크’ 하나하나가 한국 수영의 역사 한 줄, 또 한 줄이었다.4년 전 박태환은 아테네올림픽 선수단 가운데 최연소로 첫 올림픽 무대에 섰다. 그러나 자유형 400m 예선에서 제대로 쓴 맛을 봤다. 너무 긴장한 탓에 준비 구령소리에 그만 물로 뛰어들고 말았다.15세의 나이에 당돌하게 도전한 올림픽 첫 출발대에서 실격, 팔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실격당했다.2시간여 동안 화장실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못하고 눈물만 쏟아냈다. 그러나 쓴 약은 몸에 이로운 법. 그에게 아테네의 처절했던 경험은 ‘베이징 신화’를 일구기 위한 ‘보약’이었다.
아테네올림픽 직후부터 박태환은 재도전을 시작했다. 그 해 1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경영월드컵(쇼트코스) 자유형 1500m에서 준우승으로 제대로 된 이름 석자를 세계 무대에 알린 뒤 이듬해 몬트리올 세계수영선수권, 전국체전,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등에서 한국신기록을 무려 8개나 쏟아내며 세계 무대를 향해 한 발씩 걸음을 내디뎠다.
2006년 8월 범태평양선수권에서는 아시아신기록을 2개나 작성하며 금 2개와 은 1개를 거머쥐었다.12월 도하아시안게임 3관왕(200·400·1500m)의 상승세는 세계를 향한 도약대였다. 지난해 멜버른 세계선수권 400m에 나선 박태환은 그랜트 해켓(호주)을 꺾고 정상에 올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제 올림픽 정상을 노크할 시간.1989년 9월27일 박인호(58), 유성미(51)씨의 1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나 천식을 고치기 위해 7세 때 처음 물에 뛰어들었던 박태환은 4년 전 아테네의 악몽을 곱씹는 듯 10일 자유형 400m 결선의 물살을 힘차게 가르기 시작했다.
7차례 반환점 벽을 발로 차낼 때마다 지난 4년 동안의 땀과 눈물까지 함께 차냈을 터. 불협화음 끝에 재회한 ‘노민상 선생님’과 함께한 지난 24주 동안의 시간도 물에 술술 풀어헤쳤다. 터치패드를 찍은 박태환은 전광판을 바라봤다. 커다랗게 쓰여진 3분41초86. 이언 소프(호주)의 세계 기록과 올림픽 기록에 각각 1.78초와 1.27초 못미치는 기록이지만 박태환은 분명히 수영의 역사를 새로 썼다. 아시아 선수로는 72년 만에 올라선 남자 자유형 올림픽 정상이었다.
베이징 올림픽특별취재단
2008-08-1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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