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탐방] 장기봉사 채현숙·김명원 전직교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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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6-27 00:00
입력 2008-06-27 00:00

아들있는 꽃동네로 이사와 출퇴근 봉사

“동료 교사들이 퇴직한 뒤 별 의미없이 사는 모습을 보고 자원봉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내 채현숙(69)씨와 함께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4년 가까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명원(67)씨는 “보람이 크고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전직 부부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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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김씨는 수용자를 부를 때 “어이, 박○○씨”라며 이름 석자를 호명한다. 그러면 수용 노인들은 “어서 이리 오게”라 손짓을 하면서 반긴다. 두 다리가 기형이고, 곱사등이인 정하윤(78)할아버지는 “김씨와 친구처럼 지내는데, 잔심부름을 시켜도 머슴처럼 다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며 웃었다.

김씨는 경남 거창에서 중·고교 교사생활을 하다가 2004년 8월 퇴직한 지 3개월 만에 이곳에 왔다. 그는 “동료 교사들이 퇴직한 뒤 수시로 모여 술을 먹거나 고스톱치는 모습을 보고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할 일 없으면 학교 앞에서 안전지도나 하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아내 채씨는 1996년부터 꽃동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거창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하고 있었지만 막내 아들(36)이 어릴 적 머리를 다쳐 자폐증과 정신박약증세를 보이자 교사생활을 접고 이곳에서 아들과 같은 처지의 수용자를 돌보고 있다. 남편도 퇴직하자, 부부는 집을 아예 꽃동네 근처로 옮겨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매달렸다.

김씨 부부는 오전 9시 꽃동네로 달려와 수용자들의 수발을 든다. 양치, 면도, 머리빗기 등을 돕고 손톱도 깎아준다. 로션도 발라주고 이불도 갠다. 수용시설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내 채씨는 “할머니도 여자라 매니큐어를 발라주면 소녀처럼 기뻐한다.”고 했다.

남편 김씨는 “처음에는 출근하듯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씩 꼬박 일하자 몸살이 나는 바람에 요즘은 2∼3일만 일한다.”면서 “꽃동네는 오웅진 신부의 것이 아니라 수용자들의 것인데 오 신부 사건으로 자원봉사자가 크게 줄어든 게 참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몇년전 막내 아들을 이곳에 맡겼다. 김씨는 “수용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실감과 공허감을 채워주는 것”이라면서 “그들이 ‘나도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감에 젖는다.”고 전했다.“주는 것보다 내가 받는 게 더 많다.”고 했다.

어떤 할머니는 캔커피를 몰래 숨겼다가 채씨에게 슬쩍 건네주고, 어떤 할아버지는 김씨를 만나면 얼굴을 툭툭 치면서 반가움을 표시한다.“형수 왔다.”“오빠”하며 김씨 부부를 부르면서 난리를 피우기도 한다. 김씨 부부는 “기분이 우울할 때에도 이곳에 오면 모두 풀린다.”며 웃는다.
2008-06-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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