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퀴담 ‘그저 서커스’
첨단 무대장치로 무장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특급호텔에서 밤마다 입장권을 구하려는 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 그러한 태양의 서커스 최신 공연에 비하면 국내 공연은 서커스란 구식 버전에 충실하다. 공중그네, 공중팽이, 공중제비 등 이들이 보여 주는 묘기도 한국 워커힐 호텔에서 했던 쇼나 명절이면 TV에서 지겹도록 봤던 ‘세기의 서커스’를 통해 낯익은 것들이다.
‘퀴담’을 단순한 서커스 이상의 공연으로 만드는 것은 묘기를 한치의 오차 없이 해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아슬아슬하게 공중그네를 타고 배우들이 천막극장을 날아다닐 때에도 바닥에는 안전그물조차 없다. 실크 천을 이용한 공중 곡예도 워커힐쇼 등에서 봤던 것이지만, 그 자태만큼은 명불허전이었다.
서커스 하면 흔히 연상하는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이용한 쇼나 불과 물 같은 위험한 세트를 사용하는 아슬아슬한 묘기, 기상천외한 마술은 없어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퀴담’의 백미로 많은 사람들이 꼽는 것은 남녀 배우가 한몸이 되어 믿기 힘든 유연성과 균형감각, 힘을 보여 주는 조각상 연기이다. 세트나 장치보다는 인간 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연기가 ‘퀴담’의 중심이다.
하지만 이 조각상 연기가 일부 공연일정에서는 사전 예고없이 단순한 공돌리기(저글링)로 대체돼 관객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퀴담’의 음악은 뮤지컬처럼 공연마다 라이브 밴드가 연주한다.‘퀴담어’라 이름 붙인 세계 언어의 영향을 받아 만든 가사로 부르는 노래 또한 신비롭고 몽환적이다. 그러나 노래와 음악이 있다고 해서 이야기가 있는 공연은 아니다. 서커스 묘기는 소녀와 가족, 퀴담(머리 없는 익명의 남자) 등 극의 줄거리를 형성하는 기둥인물과 융합되지 못한다.
일단 태양의 서커스 한국 상륙은 성공적이다. 이미 금요일밤 공연은 매진사례일 정도로 인기와 관심이 폭발적이다. 세종문화회관 옆에서 천막극장을 짓고 공연했던 ‘델라구아다’도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수익면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올해 한국 공연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한 태양의 서커스가 서커스 묘기만으로 우리 공연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