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대선과 역술
수정 2007-03-31 00:00
입력 2007-03-31 00:00
“무궁화꽃이 나라를 뒤덮는다.”(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천운(天運)과 인운(人運)이 모두 다 있다.”(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해년인 올해는 ‘해중갑목(亥中甲木)’의 해로, 현재 물속에 숨어 있는 큰 나무(甲木)가 하반기에 떠오르며 여권에서 나올 것이다.”
대선 때만 되면 역술 얘기가 참 많이 나온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대운을 타고났느냐, 누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느냐를 놓고 점괘가 난무한다. 어지러울 정도다.1997년이나 2002년에 비해 강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역술인들도 이때만큼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앞일의 불투명성과 피 말리는 경쟁에 따른 불안심리 때문이다. 후보들보다는 그쪽에 줄을 선 정치인들이 더 그렇다. 잘 알다시피 우리의 대선은 철저하게 승자의 독식 구조다. 패자 쪽에 줄을 선 현역 의원은 다음 총선 공천도 보장받기 힘들다. 요즘 여의도 정가에선 누가 되든 18대 총선의 대폭적인 물갈이를 예상한다. 한나라당에서는 영남권이 주 타깃이 될 것이란 소문이 그럴듯한 분석과 함께 나돈다.
전직 의원이나 당료 출신, 대학 교수 등 나머지 인사들도 자기가 도운 후보의 당락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 그렇다 보니 각 캠프 인사들은 알게 모르게 ‘용하다’는 역술인들을 찾는다고 한다.
사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정치 또는 선거와 역술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역대 정치인 중에 한 번 이상 점괘를 보지 않은 정치인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지금은 고인이 된 황락주 전 국회의장을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듯싶다.
황 전 의장은 평상시에도 와이셔츠나 넥타이 색깔까지 역술가에게 자문하고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선거 때는 유세지역 순서나 교통편 등과 관련해 하루에도 몇 차례 점을 봤다고 한다. 점괘를 철저하게 신봉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정치인이었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탈당을 결심하게 된 데는 김지하 시인과 소설가 황석영씨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 한데 황석영씨는 향후 진로를 놓고 고심하던 손 전 지사를 만나 프랑스 역술가가 점친 손 전 지사의 올해 점괘를 전하며 당을 뛰쳐나올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고 한다.6월이면 대운이 펼쳐지니까 더 이상 한나라당의 울타리에 연연하지 말라는 게 골자. 이 얘기는 손 전 지사 지인들에게 꽤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점술은 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잘 나오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되는 것이고, 좋지 않으면 조금 더 조심하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심심풀이 정도에 그쳐야 한다.
1997년이나 2002년 대선 때도 그랬지만 점괘가 제대로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 전 시장의 승리를 점치는 역술인들이 별로 없는 것도 이를 방증하는 게 아닐까. 역술인들도 불확실성이 좀 더 많은 쪽에 베팅한다고 할까.
무엇보다 이런 현상은 후보별 줄서기나 눈치보기의 파생물이라고 본다. 후보는 물론 후보를 위해서 일한다면, 소신껏 정책을 개발하고 좀 더 국민들의 폐부를 들여다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우선이다. 올 대선은 국민들의 신뢰 속에 제대로 나라를 이끌 힘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승자가 결정돼야 한다.
jthan@seoul.co.kr
2007-03-3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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