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때 부처님 다리를 끌어안는다
송나라의 개혁정치가 왕안석이 어느날 손님과 한담을 나누던 중 우연히 자신의 처지를 개탄하며 “난 이제 늙었으니 스님들과 사귈 때가 됐다(投老欲依僧).”는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이를 받아 “일이 급하게 되니 부처님 다리를 끌어안으려 한다(急卽抱佛脚).”고 응수했다고 한다. 송나라 때 유빈이 편찬한 ‘공부시화(貢父詩話)’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평상시엔 향(香) 올릴 생각을 않다가 위급에 처하게 되니 부처님 다리를 잡고 애걸한다는 말도 있다. 요즘 정치판의 ‘신종’ 짝짓기가 꼭 그런 형국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근 회동은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다가올 정계개편과 관련해 모종의 접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야당에선 “다급해진 노 대통령과 DJ가 다시 구태정치로 돌아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며 연일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정치투기꾼들의 ‘떴다방 정치’라는 희대미문의 원색적 표현까지 나왔다. 노 대통령은 진정 꺼져가는 정치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지역할거주의에 다시 기대려 하는가.DJ는 햇볕정책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명예를 지키기 위해 기어이 호남을 볼모로 상왕(上王)정치를 하려 하는가.
독일의 산문작가 안톤 슈나크는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썼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레 지나가는 기차…. 국민의 눈물은 아랑곳없이 권력으로만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 같은 정치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jmkim@seoul.co.kr
2006-11-1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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