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641)-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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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07-06 00:00
입력 2006-07-06 00:00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4)


설혹 내가 갈대를 베어내 그 날카로운 잎으로 얼굴을 긁어내려 망신창이를 만들고 그 상처 위에 곤죽같이 된 흑감탕을 발라 일부러 성이 나게 하여 곯고 부어오른 추악한 귀신의 얼굴이 된다 하더라도 나으리께서는 이 두향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시고 나를 내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강물을 거슬러 오는 듯한 뱃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평소에도 강선대가 마주 보이는 강 건너편에는 이조대란 바위가 있어 바위를 굽돌아가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바위에 부딪치는 물소리가 아니라 강을 거슬러 오는 나룻배의 소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두향은 전모를 쓰고 집 밖으로 나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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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호수 위로 나룻배 한 척이 노를 저으며 두향이가 있는 강선대 쪽으로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춘삼월이라 쌀쌀하였지만 겨우내 얼어붙었던 얼음들은 한꺼번에 해빙되어 물살들은 와랑와랑 성미 급한 물소리를 내면서 흘러가고 있었고, 마침 석양 무렵이었으므로 강물 위는 그대로 핏빛 천지였다.

나룻배 위에 탄 사람이 누구인가, 두향이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닷새 전에 매분을 가지고 안동으로 떠났던 아전이었던 것이다.

순간 두향은 선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방금 전 낮잠 속에서도 큰 별이 떨어지는 흉몽을 꾸었으므로 행여 공들여 키운 분매를 나으리께 전하지도 못하고 대신 나으리께서 돌아가셨다는 흉보를 전해 듣게 되는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하여 두향은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어 버린 듯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나룻배는 강선대 바위에 닿았다.

“아씨마님.”

강 한복판에서부터 나와 기다리는 두향이를 보고 있었던 듯 배가 바위에 닿자 여삼이가 뛰어내리며 말하였다.

“방금 안동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요, 아씨마님.”

여삼이가 다가오자 두향은 전모를 눌러쓴 채 얼굴을 가리고 먼저 초막집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삼이가 한때 나으리를 모시던 아전이라 하더라도 두향에게 있어서는 엄연한 외간 남자. 두향은 먼저 방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근 후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내외하며 말하였다.

“나으리는 만나 뵈셨습니까.”

“물론입니다요, 아씨마님. 만나 뵈었을 뿐 아니라 하룻밤 서당에서 황공스럽게도 쇤네를 유하게 해주시었기 때문에 지척에서 모실 수도 있었나이다.”

다시 긴 침묵이 왔다.

여삼은 툇마루에 앉은 채 답답한 마음으로 하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2006-07-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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