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626)-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9)
수정 2006-06-15 00:00
입력 2006-06-15 00:00
제1장 相思別曲(9)
노인은 유생을 따라 서당 안으로 들어섰다.
서당 안 동쪽구석에 조그마한 연못 하나가 있었다. 아직 철이 아니어서 연꽃이 피어 있지 않았지만 퇴계가 직접 땅을 파서 만든 연못이었다.
정우당(淨友塘).
퇴계가 스스로 지은 시속에 ‘조용히 떠나는 모습 가만히 생각하니 진실로 어려운 친구로다.’고 표현하였던 것처럼 ‘청정한 벗’인 연꽃을 상징하는 정우당. 그 연못가에 퇴계가 홀로 서 있었다.
퇴계를 보자 노인은 그 즉시 무릎을 꿇고 문안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아이고 나으리,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뉘시온지”
퇴계는 미천한 사람을 만나도 결코 ‘너’라고 부르는 식의 하대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젊은 제자들을 만나도 공대를 하곤 하였다. 그러자 노인이 황송하여 몸을 굽히며 말하였다.
“나으리, 쇤네를 모르시겠나이까.”
퇴계는 물끄러미 노인을 바라보았다. 분명 알 것 같이 낯이 익긴 하였으나 가물가물하여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잘 생각이 나지 않소이다만”
“나으리”
노인은 읍을 하며 대답하였다.
“쇤네는 나으리께오서 일찍이 단양에 군수를 하시 올 때 이방으로 있던 자이나이다.”
순간 퇴계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노인의 말을 들은 순간 희미한 옛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20여 년 전 퇴계가 9개월 동안 단양의 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무렵 퇴계를 도와 인사와 비서노릇을 하던 이방아전이었던 것이다.
“그대의 이름이 여삼이가 아니었던가.”
“그렇습니다, 나으리. 나으리께오서 쇤네의 이름까지 아직 기억해 주시다니요.”
“그뿐인가. 그대는 나에게 삼베까지 주려하지 않았던가.”
퇴계의 말은 사실이었다.
퇴계가 20여 년 전 명종4년 10월, 단양군수를 사직하고 이웃한 풍기로 전근가기 위해서 죽령고개를 넘고 있을 때 퇴계가 탄 가마를 관졸들이 헐레벌떡 쫓아왔었다. 그 중에 앞장을 선 사람이 이방 여삼이었던 것이다.
그때 여삼은 손에 다발을 들고 뛰어오지 않았던가.‘무슨 일이냐.’고 퇴계가 묻자 이방이 나서서 ‘나으리, 이것은 삼베를 짜는 삼이옵니다. 이것은 아전에서 거둔 것인데, 퇴임하는 사또께서 노자로 쓰기로 전례가 되어 있어 가져온 것이기에 바칩니다.’하고 삼베다발을 내어 밀지 않았던가.
아전이란 관청에 딸린 밭으로 동원근처에서 심은 삼이었던 것이다.
아전은 국가의 토지인 만큼 대부분 관아에서 사용하는 비용이나 특히 사또의 개인사비로 충당하는 관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관례에 따라 이방을 앞세운 군졸들이 삼베를 거두어 퇴임하는 퇴계에게 가져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2006-06-15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