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영월 가정마을~정선 거북마을
강성남 기자
수정 2006-06-09 00:00
입력 2006-06-09 00:00
세월 저편에서 맴도는 가락
강 건너 마을이 있으면 어렵지 않게 눈에 띄던 줄배가 보이지 않는 대신에 우람한 콘트리트 다리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노를 사용하는 대신 강변 양쪽에 줄을 매어 배를 연결해 사용하는 줄배의 존재를 자신 있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조차 드물다. 뜨거운 초여름의 햇볕을 피해 길가 나무 그늘 밑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촌로에게 꼬치꼬치 물어 봐 어렵게 찾았다.
줄배를 타고 정선에서 강을 건너 영월의 가정마을에 들어가니 방치된 폐가 사이로 금낭화가 핀 집이 보인다. 강원도에서는 며느리밥꽃이라 불리는 꽃이 우물가에 탐스럽게 피어 있다. 정희득(65) 김연자(60)씨 부부가 사는 집.
“내가 어릴 적에는 줄배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지. 아침에 연포학교로 가는 아이들을 시간 맞춰 건네주고, 강 건너 큰 밭에 일 나가는 아낙들 태워다 주고, 장날에는 마을사람들이 장에서 팔고 산 물건 한 보따리씩 들고 드나들면 하루 종일 서울 택시보다 바쁘게 왔다갔다 했어.”
저녁 무렵 경사진 밭머리에서 내려 본 마을의 많은 집 중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 집은 두 집뿐이다. 나머지는 빈 집이다.
눈을 돌려 강 건너 정선 덕천리 거북마을을 봤다. 민박을 치며 사는 부부가 유일한 주민이다. 얼마 전 복부 한쪽에 잡히는 것이 있어 서울 병원에 입원한 남편이 걱정이라며 이재화(62)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눈시울을 적신다. 혼자 있는 어머니 생각에 낮에 다녀간 영월에 사는 딸이 당부한 저녁 식사도 입맛이 없다면서 소주나 한 잔 하자고 손목을 잡는다.“저 놈의 소 때문에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영감 혼자 병원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속상해.”라며 신세한탄을 한다. 곧 이어 “그래도 영감 없으면 못 살것 같다.”며 애틋한 사랑을 내비친다.
거북마을에서 강 상류로 2㎞ 정도 떨어진 연포마을. 적막한 마을입구에 폐교된 연포분교가 눈에 들어 온다. 혹시 관광객이라도 찾아올까하는 기대인지 ‘선생 김봉두 영화 촬영장소’라는 표지판이 입구에 초라하게 흔들리고 있다. 두런두런 하는 말소리를 쫓아가 보니 이명용(80) 할아버지가 마실온 이옥순(78) 할머니와 툇마루에 멀찍이 앉아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부끄러운 듯 더 멀리 떨어진다.
50년 이상 동강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 강에서 태어나 동강을 떠나본 것은 젊은 시절 일제 징용과 6·25전쟁 때가 전부다. 이들은 다시 강으로 돌아와 여지껏 후회와 보람,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평범하지만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글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2006-06-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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